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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 전남 보성군 오충사(五忠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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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이'''(宣居怡, [[1550년]] ~ [[1598년]])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보성 선씨|보성]], 자는 사신(思愼), 호는 친친재(親親齋)이다. 보성선씨 시조 선윤지(宣允祉)의
판서 선형(선형)의 증손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초기에 [[이순신]]의 휘하에서 [[한산도 대첩]]에 참전하여 승전했고, 그해 [[12월]]에는 [[전라도]][[병마절도사]]로서 독산산성에서 일본군과 분전하는 권율을 도와, [[행주산성]]으로 넘어가도록 도와주었다. 1594년 9월의 장문포 해전에서 승전하였다. 1605년 [[선무공신|선무]][[원종공신]]일등(宣武原從功臣一等)에 추봉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초기에 [[이순신]]
== 생애 ==
[[1569년]]에 [[선전관]]으로 등용되고, [[1570년]]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6년]]에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이일]](李鎰)의 계청군관으로 [[함경도]]에 배치되어 그곳에서 충무공 [[이순신]]을 만났다. [[1587년]] [[녹둔도 사건|녹둔도]]에서 조산보 만호 이순신과 함께 [[여진족]]을 막는 공을 세웠으며, 1588년에는 거제현령, 진도군수를 역임하였다. 이어 청백(淸白)으로 성주목사를 거쳐 1591년에
이순신과는 가장 가까운 전우였으며, 나이는 이순신보다 5살 어렸지만 계급은 7등급이 앞서갔다.
1592년 7월에 한산도해전에 참전하여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함께 왜적을 크게 무찔렀다. 1592년 12월 독산산성 전투에서는
이후 한산도에 내려와서는 이순신을 도와 둔전을 일으켜 군대의 식량을 비축하여 공을 세운 바도 있고, 1594년 9월에는 이순신과 함께 장문포(長門浦))에서 일본군을 맞아서 승전, 공을 세웠다.(장문포 해전) 이어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남해·상주 등지에서 활약하였으며, 올라오는 [[일본군]]을 격퇴하여 주춤시켰다. [[1598년]] [[울산성 전투|제2차 울산성 전투]]에서 2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양호 (명나라)|양호]](楊鎬)를 도와 싸우다가 [[울산서|울산]]에서 전사하였다.
1605년 [[선무공신|선무]][[원종공신]]일등(宣武原從功臣一等)에 추봉되고
== 관련 항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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