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112번째 줄:
일본 수군이 “마치 산을 누르듯이” 울돌목을 통과하고 임하도(林下島)해역으로 들어와 좁은 목을 통과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선수군이 이곳을 막고 있었고 왜선은 조선군에 막혀 통과를 하지 못했다. 이때 이순신과 그를 따르던 7척의 판옥선들이 임하도 바깥 해역을 우회하여 진군하였고
[[파일:임하도해역.jpg|섬네일|임하도해역]]
121번째 줄:
====조선 수군의 공세====
이순신은 무상(無上,물긷는 군사)김돌손(金乭孫)을 시켜 즉시 마다시(馬多時)를 끌어올릴 것을 명했다. 갈고랑쇠에 낚여 배 위로 끌려 올라온 적장 마다시(칸 마타시로 마사케가)는 곧바로 촌참(寸斬)하자 조선 수군의 사기는 급격히 올라갔다. 반면에, 전투 중에 지휘관이 적군에 의해 참수되고 토막난 것을 본 일본 수군의 사기는 떨어졌다. (내도수(來島守)인 구루시마 미치후사는 부상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난중잡록에는 효수되었다고 기록되었다.)
<br>
이에 선묘중흥지에는 통제사가 마다시의 목을 효수하여 도발을 하자 내도수가 이끄는 일본 수군이 두패로 나누어서 통제사가 이끄는 조선수군을 공격하였지만 효과가 없었다.
포구안으로 여러 전선이 모인 조선 수군은 일본 수군들을 화전(火戰)으로 유린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기술은 [[난중잡록]]과 [[선묘중흥지]]에 기록되어 있다. 해남명량대첩비(海南鳴梁大捷碑)에도 "적의 배는 불에 타고 부서져서 침몰되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