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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전 위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학설이 있었으며 정확한 해전 위치를 찾지 못함에 명량해협의 중간인 울돌목에 한정해서 정설로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울돌목은 대한민국에서 조류가 가장 빠른 곳이므로 무동력선이 해전을 치르기에는 부적합하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고대 문헌을 이해 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으며 통제사 이순신의 전술을 이해하는데 오류가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닻을 내리고 중류(中流)를 막게 한다"함은 [[항로]](航路)를 차단하는 것을 말하며 단 1척의 왜선도 통과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임무가 달성될 때까지 닻을 올리지 않아야 한다. 울돌목이라면 이러한 조건을 달성하지 못한다. 또한 항로(航路)를 차단했기에 통제사는 섬을 우회하여 배후를 공격해야 하지만 울돌목이라면 진도 섬을 우회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통제사가 병력을 나누어서 각기 다른 임무를 부여했음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동안 미궁에 빠졌던 부분이다.(이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br>
명량해전에 대한 학설중에서 사관학교 “이민웅” 교수님이 말씀하신 “우수영 앞바다설”이 있는데 이 학설은 물살이 느린 지점(양도-학동리 인근)에 조선 수군이 포진해 있는 것이 핵심이다.(차후 이민웅 교수님은 임하도 해역이 명량해전 발원지로 지목하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박도 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인용문| 우선 우수영 앞바다는 조류의 흐름과 무관하며 바다는 호수같이 잔잔하다. 때문에 조류의 방향이 바뀌어도 왜군들은 물러가지 않고 조선 함대가 궤멸될 때까지 계속 공격해 올 것이다. 또 <지도 5-1-2>(옮긴이 주 : 우수영 앞바다에서의 전투모습)와 같은 진법으로 대치하고 있었다면 마다시의 죽음과 관계없이 도도 다카도라, 구키 요시다카, 와키자카 야스하루 등의 선단들도 총력 공세를 폈을 것인바, 왜군들은 칠천량에서 조선 함대를 전멸시켰듯이 13척의 이순신 함대를 전멸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진도대교 아래에서 마다시를 죽였고 마다시 선단을 대신해서 공격을 시도코자 했던 도도 다카도라 등 뒤따르고 있던 왜선단은 패전한 마다시의 선단이 불이 붙은 채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떠내려 오고 있었기에 공격에 나설 수 없었다. 그 위에 역류가 된 물살은 더욱 급류로 변해 갔기에 이순신 함대에 접근해 간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렇게 정리해 볼 때 필자들은 <지도5-1-2>에 동의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