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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찬]]: 수나라 관료 출신. [[호남성]] 남부와 섬서성 북부 일대를 방랑. 가루다왕(迦楼羅王)을 참칭했다가 이후 초 황제를 참칭.
 
이연, 유무주, 양사도, 두건덕, 고개도 등은 시비 카간에게 형식적으로 신속하고 동돌궐의 지원을 받았다. 이 때 시비 카간은 한족들의 분열이 유지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 617년 겨울 이연이 장안성을 함락시키고 양유를양유(楊侑)를 [[수 공제]]로 즉위시키고 양제는 퇴위, [[태상황]]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연의 점유 지역에서만 통했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여전히 양제가 수 제국의 황제로 받아들여졌다. 이연은 공제의 [[섭정]]이자 당(唐)왕이 되었다.
 
[[파일:Transition from Sui to Tang family tree (KO).svg|섬네일|center|800px|수당교체기 황실 가계도. 수 황실과 당 황실은 친인척 관계다.]]
== 양제 시해와 당 제국 건국 ==
[[파일:Establishment of Tang Dynasty.jpg|350px|섬네일|이연 세력의 당 건국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
제국이 무너지고 있는 사이 양제는 친위대 [[효과군]](驍果軍)의 경호를 받으며 강도에 틀어박혀 있었다. 양제는 [[왕세충]]을 낙양성으로 파견해 이밀의 공격을 방어하게 했다. 화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진 양제는 단양(오늘날의 [[강소성]] [[난징 시|남경]])으로 수도를 옮기기로 했다. 그러나 효과군 병사들은 대부분 화북 출신이라 이 결정에 불만을 갖고 탈영하기 시작했다. 탈영하다 잡힌 병사들은 양제에게 가혹한 처벌을 당했다. 두려워진 효과군이 작당하여 우문술의 아들 [[우문화급]]을 지도자로 반란을 일으켰다. 618년 봄, 양제는 효과군에게 살해당했다. 우문화급은 양제의 조카 [[양호 (586년)|진(秦)왕 양호(楊浩)]]를 황제로 옹립하고 그 섭정이 되었다. 우문화급은 강도를 버리고 효과군을 이끌고 북상했다.
 
양제가 죽었다는 소식이 곧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 장안성의 이연은 공제에게 [[선양]]을 받고 황제가 되어 [[당나라|당 황조]]를 개창했다. 낙양에서는 관료 7명이 양제의 다른 손자 [[양동 (604년)|(越)왕 양동(楊侗)]]을 황제로 옹립했다. 이 때만 해도 많은 군현들에서는 양동을 정통 황제로 인식했다. 낙양성 안의 수 황조 잔당과 낙양성을 공격하던 이밀 모두 우문화급의 북상을 위협적으로 여기고, 우문화급을 막기 위해 이밀이 양동을 황제로 인정하고 일시적으로 동맹했다. 하지만 이밀이 우문화급을 격퇴하자 왕세충이 동맹을 깨고 양동의 섭정이 되었다. 그해 말 왕세충은 이밀을 기습해 그 군세를 와해시켰고([[언사 전투]]), 이밀은 당 황조에 항복했다. 이후 이밀은 당에서 이탈하여 재독립을 꾀하다 잡혀 죽었다.
 
한편 618년 초 설거가 죽고 그 아들 [[설인고]]가 그 세력을 계승했다. 이연의 아들 [[당 태종|진(秦)왕 이세민]]이 설인고를 무찌르고 잡아 죽임으로써 설씨의 서진이 당에 흡수되었다. 한편 우문화급은 양호를 독살하고 황제를 참칭했다가 두건덕에게 패해 죽고, 두건덕은 황하 이북을 거의 통일했다. 하지만 북경 일대의 나예를 굴복시키는 데 실패했고, 나예는 당에 항복한다. 주찬은 자기 영지에서 학정을 펼쳐 백성들의 이반이 일어나자 왕세충이 이끄는 수 잔당과 당 사이를 저울질한 끝에 왕세충에게 항복한다. 이 모든 일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