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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2》, 민음사, 1992
*〈중부내륙 고속도로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 《연구소총서》 1책, 1992
*〈갑골문에 나타난 고대 중국인의 신앙〉, 《승가》 제10집, 1993
*〈고조선의 경제적 기반〉, 《백산학보》 41호, 1993
*〈고조선의 종교와 그 사상〉, 《동양학》 제23집, 1993
*〈인류사회진화상의 고조선 위치〉, 《사학지》 제26집, 1993
*〈정선 덕천리 소골 유적(1): 고인돌 발굴보고〉, 《고적조사보고서》 17권, 1993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4
*〈한민족의 형성과 출현〉, 《사학지》 제27집, 1994
*〈고구려의 이동과 건국〉, 《백산학보》 45호, 1995
*《고조선 - 우리의 미래가 보인다》, 민음사, 1995
*〈단군신화의 역사적 해석〉, 《인문과학연구논총》 제13호, (명지대학교), 1995
*〈열국시대의 한반도 말갈〉, 《한국민족학연구》 3권, 1995
*《중국사3》, 민음사, 1995
*〈갑골문에 보이는 “부모(婦某)”가 상대사에서 갖는 의미〉, 《사학지》 제29집, 1996
*〈신라 초기의 사회성격에 대한 재검토〉, 《고문화》 49집, 1996
*〈가야의 건국과 성장에 대한 재고찰〉, 《사학지》 제30집, 1997
*〈고조선은 실제로 존재했는가〉, 《한국인》 16권 7호, 1997
*〈동부여의 국가와 사회성격〉, 《백산학보》 49호, 1997
*〈국조신화: 단군 신화의 역사성과 환웅 곰 호랑이의 정체〉, 《인문과학》 28권, 1998
*〈한국사에서 고대와 중세의 전환시기〉, 《동양학》 제28집, 1998
*《한국열국사연구》, 지식산업사, 1998
*〈이은봉 교수님의 “단군의 참성단과 홍익인간 사상”을 읽고〉, 《누리와 말씀》 5권, 1999
*《홍익인간의 세계와 이해(공저)》, 단국대학교출판부, 1999
*〈현행 국사교과서의 문제점과 개편방향: 상고사를 중심으로〉, 《단군학연구》 제3호, 2000
*〈고조선의 도읍 위치와 그 이동〉, 《단군학연구》 제7호, 2002
*〈고조선의 국가구조와 그 성격〉, 《단군학연구》 제9호, 2003
*〈단군학 정립을 위한 몇 가지 전제〉, 《단군학연구》 제8호, 2003
*《우리 고대사 - 상상에서 현실로》, 지식산업사, 2003
*〈고구려사의 귀속문제〉, 《단군학연구》 제11호, 2004
*《광개토대왕이 중국인이라고?(공저)》, 중앙일보시사미디어, 2004
*〈고조선의 종교와 사회성격〉, 《단군학연구》 제12호, 2005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지식산업사, 2005
*《새로운 한국사(개정판, 공저)》, 집문당, 2005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 - 동북공정 논란을 둘러싼 진실게임》, 지식산업사, 2007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공저)》, 지식산업사, 2007
*〈조·연 전쟁의 전개와 국경 변화〉, 《단군학연구》 제20호, 2009
*〈고조선의 붕괴 원인〉, 《단군학연구》 제23호, 2010
*〈“삼국유사”와 “잠부론”의 고조선 인식〉, 《단군학연구》 제22호, 2010
*〈고조선의 실존문제: 상식적 탐색〉, 《단군학연구》 제25호, 2011
*《고조선 연구 (상)》, 만권당, 2015
*《고조선 연구 (하)》, 만권당, 2016
 
== 비판과 반론 ==
이형구와 서영수는 윤내현의 고조선 관련 연구 및 그의 대표적인 저서 《[[고조선 연구]]》는 [[북한]]의 [[역사학자]]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1963)를 표절했다는표절했다고 비판을주장을 받았다했다.<ref>이형구, 〈리지린과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비교〉, 《역사학보》 146호, 1995 / [[서영수 (1949년)]], 〈요동군의 설치와 전개〉 p22, 《요동군과 현도군 연구》, 동북아역사재단, 2008</ref>
 
그런데, 윤내현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정보부의 조사를조사까지 받았다고 한다. 북한 학설을 유포하여 학계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졸지에 북한 공산주의를 추종한다고 매도당했다.<ref>윤내현,《우리 고대사 - 상상에서 현실로》,지식산업사, 2003, p.227. </ref>
이와는 반대로 독재정권에 발맞추어 도움을 준 것처럼 헛소문이 퍼지기도 했다.<ref>《우리 고대사 - 상상에서 현실로》,지식산업사, 2003, p.229.</ref>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윤내현이 재직하던 단국대학교의 당시 총장에게 학교에서 쫓아내라는 투서가 들어왔다. 윤내현은 학교의 입장이 난처하면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당시 총장은 새로운 학설을 내놓는 것이 학자의 본분이라며 오히려 격려해주었다고 한다.<ref>《우리 고대사 - 상상에서 현실로》,지식산업사, 2003, p.227.</ref>
 
 
또한 이형구는 윤내현에 대해서 "민족사학자들의 견해를 수용·보완한 북한 학자의 연구 업적과 발굴 자료를 많이 활용하면서도 이에 대한 설명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나 민족사학자들은 약간의 견해를 피력했을 뿐이지 리지린과 같은 본격적인 연구는 없었다. 또 분단시대의 한국 역사학계가 겪고 있는 고통 때문에 주기를 일일이 달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왜 다른 학자들은 북한의 학술 성과를 주기로 소개한단 말인가? 그리고 역사학계만이 마치 그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표현하여 일반 독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분단상황은 민족 모두의 고통이지 역사학계만 안고 있는 고통이 아니다. 북한의 자료가 제대로 입수되지 못하고 또 입수하기 어려운 상황이 고통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입수하고 검토하여 활용한 자료를 유독 밝히지 않고 넘어가겠다는 것은 분단상황의 고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자신의 주장에 영향을 주고 참고로 삼은 타인의 연구 업적을 밝힐 용기가 없으면 글을 발표하지 않는 것이 바른 태도이다."라고 비판하였다.<ref>이형구, 〈리지린과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비교〉, 《역사학보》 146호, 1995</ref>
 
윤내현은 이런 비판에 대해 윤내현은“나의대해“나의 주장은 [[신채호]]·[[정인보]]·[[장도빈]] 등의 ‘민족사학자’들이 주장해왔던 기존 학설과 궤를 같이하고 있을 뿐 표절과는 거리가 먼 주장”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조치가 학자의 양심을 저해한 행위가 아니며 자신의 연구 결과에 따른 것이라 말하고 있다. <ref>「고조선의 강역」해석싸고 표절 논쟁 재연 경향신문 6면 생활/문화 기사(뉴스, 1986.04.23) 참조</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6042300329206001&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6-04-23&officeId=00032&pageNo=6&printNo=12483&publishType=00020|제목=「古朝鮮(고조선)의 疆域(강역)」해석싸고 표절 論爭(논쟁) 재연|언어=한국어|성명=이용(李傭)기자|날짜=1986-04-23|출판사=경향신문(네이버)|확인날짜=2012-07-0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539985|제목="고구려 태동 현도군과 관계없어"|언어=한국어|성명=김태식 기자|날짜=2007-02-06|출판사=연합뉴스(네이버)|확인날짜=2012-07-03}}</ref><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21&aid=0000166612|제목=오후여담, 역사 vs 역사|언어=한국어|성명=김성호/객원논설위원|날짜=2006-10-04|출판사=문화일보(네이버)|확인날짜=2012-07-03}}</ref> <ref>[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81&aid=0002850292 비운의 역사학자 윤내현 서울신문 기사]</ref><ref>[https://shindonga.donga.com/Library/3/06/13/103001/5 신동아, 2003년12월호 기사]</ref>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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