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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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정보
| 이름 = 유영철
| 한자 원어이름 = 柳永哲
| 그림 =
| 출생일 = {{출생일과 나이|1970|4|18}}
| 출생지 = [[서울특별시대한민국]] [[마포구 공덕2동전라북도]] 134번지[[고창군]]<ref>[[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953]]</ref><ref>{{뉴스 인용|제목='연쇄 살인범 柳永哲의 어린 시절|url=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409100029&ctcd=&cpage=1|출판사=월간조선|날짜=2004-09}}</ref>
| 신장 = 170 cm
| 체중 = 66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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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1970년]] [[서울특별시전라북도]] [[마포구 공덕2동고창군]]에서 태어나<ref>[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409100029&ctcd=&cpage=1]</ref>태어났으며 공덕초,1살이 경서중을되던 다녔다.해에 고등학교[[서울]]로 입시에올라와 실패하여살게 1987년되었다. 5월공덕초, 학력인정을 받지 못하는 각종학교인경서중, 국제 공고에공고 입학했으나2년 중퇴([[1988년]])가 적응하지최종 못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인 88년 6월, 소년원에 입소하며 학교를 중퇴하였다학력이다. 유영철의 아버지는 큰형을 낳고 월남전에[[베트남 전쟁|월남전]]에 참전했고, 참전 후에는 음주와 외도, 노름, 폭력 등등으로등으로 부부싸움이 잦아, 유영철이 7살 때 이혼했으며, 이후초등학교 1학년 때 행방 불명되었다. 유영철이 중학교 2학년 때인 84년에 지병으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떠나게 되고. 둘째 형도형은 94년에 지병으로 사망했다사망했고. 지병이 있고 알콜 중독자에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와, 이미 형이 둘 씩이나 있는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유영철은 어머니에게 큰 부담이었고, 어린 시절을 대부분 아버지 첩의 집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어머니와쌍둥이 함께여동생이 살았다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동네 이웃 누나의 방에서 돈 23만원과 기타를[[기타]]를 훔쳐, 야간주거침입죄와 절도죄로 소년원에[[소년원]]에 입소했다. (징역형으로 군면제됨) 성장기 때 경찰을 동경하여 응시 시험까지 쳤으나 색맹으로 좌절했다고 한다좌절. 이후 경찰관을 사칭하여 금품 갈취로 생계를 이어 나간다.
 
유영철이 21살 때 마사지사인 황 모씨와 [[1991년]]에 결혼하여 바로 아들을 두었으나, 이후 14차례 특수 절도 및 성폭력 등으로 20대의 거의 대부분을 전국 각지 [[교도소]]에서 보냈다. [[2000년]] [[3월]], 특수 절도와 강간 등으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2002년]] [[5월]]에 부인이 이혼소송을 제기하였고 전처로부터 이혼을 통보받았다. (당시 아들 초등학교 4학년) 이후 말을 하지 않고 [[대인기피증|대인기피 현상]]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1&aid=0000043922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누구] 서울경제신문 2007년 4월 18일</ref> 이 때부터 감방 안에서 십자가를 부러뜨리며 신은 없다고 믿게 되었고, 이후 교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을 무차별로 살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인이 진술한 바 있다.
 
== 살인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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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거 이후 ==
유영철은 [[2004년]] [[7월 15일]] 체포되었다. 체포 당일,체포되었는데 수갑을 풀고 의경을 밀치고 도망을 간지 하루 만인1일만에 7월 16일에16일 [[수도권 전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역무원과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전원에 의해 재검거되었다가재검거 성공하였다. [[8월 13일]] 구속기소 되었다하였다. 그에게 [[이문동 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 살인범죄의 유죄가 인정되었다.인정되었으나 이후유영철은 1심과1심 2심 공판에서 중대범죄 복합살인 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의 죄목이 추가되고 형사 소송법 및 양형 규정에 따라 성폭력범죄, 강간살인, 시체손괴 유기 및 1급 살인,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12월 13일]] [[사형]] 선고받았다.선고를 받고, [[2005년]] [[6월 9일]] 대법원은 유영철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에 대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후에 이문동 살인 사건의 진범이 다른 연쇄살인범인 [[정남규 (1969년)|정남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영철에 대한 사형은 아직까지도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대한민국]]은 가장 최근인 [[1997년]] [[12월 30일]]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중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로도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2007년]] [[12월 30일]]부터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12100150 1987년 ‘박종철 사망… 민주항쟁’ 인권도약 분수령] 《동아일보》 2008년 12월 10일</ref> 유영철은 미국의 잡지 '[[라이프]]'가 [[2008년]] [[8월 6일]]에 보도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연쇄 살인자 3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41&aid=0001984990 유영철, ‘라이프지’ 선정 연쇄 살인범 31위에 뽑혀] 《일간스포츠》 2009년 8월 11일</ref>
 
 
== 수감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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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1970년 태어남]]
[[분류:살아있는 사람]]
[[분류:대한민국의 강간죄 기결수강간범]]
[[분류:대한민국의 연쇄살인자]]
[[분류:사이코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