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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이 사회주의에서 파생되었으며 사회주의의 일당독재와 국민통제,국민결속에는 파시즘이 필수불가결이라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초기 파시즘은 [[1차 대전]] 이후 나타난 사회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초기 [[국가사회주의]], [[조르주 소렐]]의 [[생디칼리즘|민족적 생디칼리즘]]이 혼합된 형태인 [[반제국주의]]적 사상이다. 또한 이러한 사회주의 사상은 민족주의 작가, 시인들의 낭만적 [[민족주의]]의 영향도 받았다. [[20세기]]에, 사회주의의 한 분파인 [[국가사회주의]]와 [[이탈리아]]의 혁명적 조합주의자 [[조르주 소렐]]의 민족조합주의 이론, 유럽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반계몽주의적 사회주의를 유럽의 [[내셔널리즘|국민주의]](Nationalism) 문학자들과 후에 [[베니토 무솔리니]]가 계승하여 [[파시즘]]이 탄생한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자본주의자 또는 자유주의 우익 세력은 사회주의와 파시즘을 동일시한다. 파시즘을 이론적으로 확립시킨 [[조르주 소렐]]이 [[마르크스주의]]자인 것을 감안하면, 마르크스주의도 파시즘의 기원이 될 수 있다. 파시즘의 사회주의적 경향은 오늘날 사회주의 운동의 모태가 되는 이론인 [[생시몽]], [[샤를 푸리에]] 계의 계몽주의적 사회주의(또는 초기사회주의)의 경향과 조금 다르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파시즘 자체가 사회주의라는 결속된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발전되어 나타난 사상이며 또한 현재도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민족주의 파시즘 성향이 존재하는 것에는 사회주의체재에서는 결속이라는 파시즘 사상이 땔 수 없는 연관성을 보이기 때문이다.<ref>한형식, 《맑스주의 역사 강의》(그린비)</ref>
 
정치적인 후기 파시즘 운동의 시발점은 [[191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시작된다. 이탈리아 초기의 [[파시스트]]들은 과격한 퇴역군인과 [[국가주의]]적 [[생디칼리스트]], [[미래파]] 지식인, 젊은 반[[부르주아]] 불만 세력, 중산층으로 [[민족]]의 영광과 사회 변화를 함께 꿈꿨던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이 사회주의자 및 급진<ref name="fact154">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최희영 역, 도서출판 교양인) 154페이지</ref> 적 [[기독교]] 정당인 이탈리아 인민당(Partito Populare Italiano, PPI)과 달랐던 점은 [[민족주의]]밖에 없었다. 실제로 초기 [[이탈리아]] 파시스트 중 많은 사람들이 [[무솔리니]]와 마찬가지로 [[좌파]] 출신들이었다. 파시스트 행동대는 파시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구성비가 우파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지주의 아들들과 심지어는 일부 범죄 집단들도 이제 파시즘 운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파시즘은 여전히 초기의 특성을 유지했다. 즉, 새로운 파시즘은 기성세대와 기득권에 저항하는 세대의 반란이었다.<ref name="fact155">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최희영 역, 도서출판 교양인) 155페이지</ref>
 
[[무솔리니]]는 [[191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실패한 [[좌파 민족주의]] 파시즘을 고수하지 않고, 자신의 운동을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는 편을 택했다. [[1920년]]에서 [[1922년]] 사이 그의 연설과 강령에서 [[무솔리니]]가 점차 우파 쪽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초기 파시즘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사상은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거부였고, 그 다음으로는 [[반자본주의]]가 사라졌다. '참호에서 얻은 반전주의'는 전투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던 당시 퇴역군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신념이었다.<ref name="fact155"/>
 
[[이탈리아]] 산세폴크로 광장에서 발표한 강령은 (피우메와 달마티아 해변에 대한 이탈리아의 권리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각 나라의 영토를 보전하는 것이 최우선의 원리'라는 국제연맹의 원칙을 받아들였다.<ref name="fact155"/> 이때까지만 해도 [[이탈리아]]의 기성 우파, 반왕당파 및 공화정 세력은 귀족과 재벌들의 이권을 수호하고 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유지하였으며, 이들을 좌파로 규정, 위험성을 경고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1919년]] [[6월]]의 강령에서는 직업적 군대를 방어적 의미의 민병대로 대체하고 무기 및 군수품 공장을 국유화한다는 파시스트들의 주장은 그대로였지만, 국제연맹 이야기는 사라졌다. [[1921년]] 발표한 강령에서 달라진 파시스트당은 국제연맹을 편파적이라고 비난하고, '지중해 라틴 문명의 보루'이자 이탈리아적인 것(Italianita)의 보루로서 이탈리아의 역할을 강조했으며, 이탈리아의 식민지 개척과 대규모 상비군의 필요성을 주장했다.<ref name="fact155"/> [[무솔리니]]는 자랑스러운 [[이탈리아]], [[로마 제국]]의 옛 영광, 반국가 행위자 처벌 등을 주장했다. 이러한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들의 주장은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대중들의 급격한 동의를 얻으면서 기성의 우파 정당을 대체하여 집권당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영국]]에서 2차대전 직후 좌파와 극우파들은 파시즘을 신봉하였으나, [[히틀러]] 등의 패망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1940년]]은 처칠이 [[노동당 (영국)|노동당]]을 포함한 거국 내각을 표방함에 따라, 일부 반공주의자들이 신봉했던 파시즘이 독일과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영국에서도 하나의 이념으로 민주주의와 대적할 수 있었던 해였다. 훗날 마이클 푸트는 "1940년은 우파에게 징발당한 대단히 상징적인 해"라고 말했다.<ref>앤드류 로버츠, 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 (이은정 역, 휴먼앤북스) 46페이지</ref>
 
== 사회주의자들의 공통된 신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