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1988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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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金賢洙, [[1988년]] [[1월 12일]] ~ )는 [[KBO 리그]] [[LG 트윈스]]의 [[외야수]], [[내야수]]이다.
 
== 아마추어 시절 ==
[[신일고등학교]]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받을 정도로 타격에 뛰어난 자질을 보였지만,<ref>[http://www.sports2.co.kr/people/people_view.asp?LCT=2&AID=180957&PG=5 2008년을 빛낼 젊은 별(2) 김현수]{{깨진 링크|url=http://www.sports2.co.kr/people/people_view.asp?LCT=2&AID=180957&PG=5 }} 《스포츠 2.0》2008년 1월 8일</ref> 외야수로서는 발이 느리고 근성이 없다는 스카우트들의 평가로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프로 팀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두산 베어스]]에 1차 지명된 투수 [[남윤성]]이 [[두산 베어스]] 입단을 거부하고 [[텍사스 레인저스|텍사스]] 산하 마이너 리그 팀에 입단해 그와 같은 고등학교이던 그를 지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 [[두산 베어스]] 시절 ===
==== 2007년 ====
[[2006년]]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25/2007072500845.html &#91;홍희정의 스포츠 세상&#93;민병헌과 김현수, ‘두산의 미래는 내 손으로’] 《조선일보》, 2007년 7월 25일 작성</ref> 주로 2군에서 활동하다가 [[2007년]]부터 99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87안타로 수준급 외야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신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스위치히터로 종종 나섰으나, 프로에 데뷔하며 좌타석에서만 들어섰다.
==== 2008년 ====
시즌 전 경기에 출전해 168안타, 3할대 타율, 4할대 출루율로 타격왕, 최다 안타, 최고 출루율 타이틀을 획득했고, 골든 글러브상(외야수 부문)도 수상했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110192 이종욱-김현수, '역경'을 딛고 거머쥔 골든 글러브]{{깨진 링크|url=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110192 }} 《Osen》, 2008년 12월 11일</ref> 2008 시즌 후, 연봉 계약 협상에서 전년 대비 200% 인상인 1억 2,600만원에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억대 연봉에 진입했고, 200% 인상은 팀 연봉 협상 사상 최대 인상율 타이기록이었다.<ref>[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029149 '200% 껑충' 김현수, 1억2600만원에 연봉 계약] 《노컷뉴스》, 2009년 1월 5일</ref>
==== 2009년 ====
전 시즌에 비해 월등히 향상된 장타력을 보이며 일약 한국 프로 야구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팀의 주포이자 4번 타자였던 [[김동주 (야구인)|김동주]]가 잔부상에 시달릴 때 4번 타자로서 자주 출장했다. 또 2009 시즌 중 주 포지션인 좌익수가 아닌 1루수로도 출전했으며, 당시 감독이었던 [[김경문]]이 2010 시즌에는 4번타자, 1루수로 기용한다고 밝혔다. 2009 시즌 올스타전에 역대 최다 득표를 획득했다. 그는 높은 타율을 기록했음에도 [[박용택]]에 밀려 타격왕이 되지 못했다. 2009 시즌 후, 연봉 계약 협상에서 전년 대비 100% 인상인 2억 5,200만원에 체결하며 5년차 타자 최고 연봉을 받게 됐다. 그는 [[KBO 리그]] 사상 첫 2시즌 연속 3할 5푼 이상을 기록한 타자로서 진기록을 세웠다.
==== 2010년 ====
개막전에서 4안타를 기록했지만 그 이후에 부진했다.
==== 2011년 ====
3할대 초반의 타율을 기록하며 지난 시즌보다 더욱 부진했고, 홈런도 11개나 줄어든 13홈런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개막 한달 4월간은 0.324의 타율로 선전했으나, 5월 타율 0.260로 주춤했고, 6월엔 다시 0.333의 타율을 기록하며 고타율을 유지했다. 7월엔 조금 주춤한 0.304의 타율을 기록했다. 8월과 9월엔 각각 0.295와 0.255의 타율을 기록하며 부진했다. 시즌이 끝나기 몇 경기전 2할 9푼 8~9리 정도의 타율을 유지하던 그는 특유의 몰아치기를 선보이며 3할대 타율을 기록했고 시즌 막판 몇 경기는 출장을 하지 않고 3할대 타율로 시즌을 마감해 4시즌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그의 기대치에 비한 부진은 소속팀의 4강 탈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삼진도 63삼진이나 기록했고, 실책은 자신이 기록한 실책 중 가장 많은 7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2011 프로야구에서 가장 많은 12개의 보살을 기록했다.
==== 2012년 ====
데뷔 시즌인 2006년과 본격적으로 출장을 시작한 2007년을 제외하고 2008~2011년까지 3할대 타율을 기록했던 그는 2할대 타율을 기록했고, 홈런은 7개로 지난 시즌인 2011 시즌 홈런 수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야말로 삼못쓰의 경지에 다다르면서 팬들로부터 질책을 받기도 했다. [[2012년]] [[8월 1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한현희]]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쳤지만, 우천으로 인해 기록이 무산됐다.
==== 2013년 ====
[[파일:Kim Hyun-soo in 2013.jpg|250px|섬네일|오른쪽|2013년 시즌 당시의 모습.]]
[[3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전에서 [[배영수]]를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 냈다. 이는 2013 시즌 두 번째 만루 홈런이었다. 전반기까지는 2012 시즌보다 1개 더 많은 8홈런을 기록했고, 팀 내에서는 [[홍성흔]]과 공동 1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2013 시즌이 되어 [[배영수]]에게서만 3홈런을 쳐 내 '[[배영수]] 킬러'라고 불렸다. [[2013년]] [[7월 31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송승준]]을 상대로 시즌 10홈런을 쳐 냈고 2년 만에 두 자릿 수 홈런을 달성했다. 시즌 3할대 타율, 16홈런을 기록했다.
==== 2014년 ====
[[3월 8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시범 경기에서 [[오주원]]을 상대로 시범 경기 첫 홈런을 쳐 냈다. 시범 경기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개막전 이후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격 장갑을 빼고 타석을 들어서거나 우타석에 서는 등 많은 노력끝에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4월 26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테드 웨버]]를 상대로 개인 통산 100홈런을 쳐 냈고, 이는 [[KBO 리그]] 64번째 기록이었다. [[4월 2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손승락]]을 상대로 개인 통산 1000안타를 쳐 냈다. 이는 [[KBO 리그]] 67번째 기록이자, 역대 최연소 기록인 [[이승엽]], [[장성호 (야구인)|장성호]]에 이어 3번째였다.
==== 2015년 ====
시즌 초 부터 타격감을 끌어올렸고, 시즌 후반부터는 붙박이 4번 타자를 맡으면서 팀 타선을 이끌며 가을야구 진출에 일조했다. 5년만에 20홈런, 6년만에 100타점을 돌파했으며 커리어 하이인 28홈런, 121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121타점은 팀 프랜차이즈 역대 한 시즌 최다 타점 신기록이었다. 또 [[KBO 리그]] 역대 6번째로 100타점 - 100득점 - 100볼넷을 달성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도 19타수 8안타, 4타점, 7득점으로 활약하며 14년 만의 우승에 공헌했다. 시즌 후 [[WBSC 프리미어 12]]에 출전한 그는 한국의 우승과 함께 초대 MVP로 선정됐다. [[2010년]] 이후 5년 만에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받았다.
 
== 미국 프로야구 시절 ==
===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 ===
2015 시즌 후, FA를 선언해 2년 700만 달러에 계약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2/17/0200000000AKR20151217086651007.HTML?input=1195m 김현수, 2년 700만달러에 볼티모어와 입단 합의] - 연합뉴스</ref> 계약 당시 로스터 25인에 포함되고 마이너 리그 거부권을 가지는 조건이었으나, 시범 경기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감독과 단장이 마이너 리그로 가라고 압력을 넣었다. 개막전 선수 소개 때 홈 팬들에게 야유까지 받으며 희대의 굴욕을 당했다. 하지만 [[4월 11일]] 그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데뷔전에서 3타수 2안타를 기록해, 한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선수 최초로 데뷔전에서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
타격이 상당히 부진해 결국 [[2017년]] 7월에 트레이드됐다.<ref>[http://www.edaily.co.kr/news/read?newsId=01131606615999440&mediaCodeNo=258 볼티모어 김현수, 필라델피아로 전격 트레이드] - 이데일리</ref>
 
== 한국 프로야구 복귀 ==
=== [[LG 트윈스]] 시절 ===
==== 2018년 ====
[[2017년]] [[12월 19일]] 4년 총액 115억(계약금 65억, 연봉 50억)에 계약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_yk/html/read.php?newsid=201712191055376561&ext=na LG, FA 김현수와 4년 115억 계약] - 마이데일리</ref>
시즌 초반에는 주로 2번 좌익수로 선발 출장했다. 외국인 타자이자 4번 타자였던 [[아도니스 가르시아]]가 부상으로 빠진 후 4번 타자와 1루수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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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출신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
{{포브스 코리아 파워 셀러브리티}}
 
[[분류:1988년 태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