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 (성씨):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8722JYB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8722JYB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2번째 줄:
 
== 법 변 卞 ==
'''[[초계 변씨]]'''(卞)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78,156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59위이다. 본관은 [[초계 변씨|초계]], 본파는분파는 초계,밀양 2본이다.
 
'''[[초계 변씨]]'''(草溪 卞氏)는[[중국]] [[주나라|주(周)나라]] 문왕의 여섯째 아들인 조숙진탁위나라 강숙(衛 康振鐸)의 후손이 변(卞)이라는 땅을 하사받고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당나라|당(唐)나라]] 천보(天寶) 연간에 예부상서(禮部尙書)을 지낸 '''변원'''(卞源)이 743년(경덕왕 2) 8학사(學士)의 한 사람으로 《효경(孝經)》 등을 가지고 신라에 동래하여 정착한 것이 시초라 하나 이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성종]](成宗) 때 문과에 급제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으로 팔계군(八溪君)에 봉해진 '''변정실'''(卞庭實)을 시조로 한다. 그의 아들에 의하여 변광(卞光)의 장파(長派), 변요(卞耀)의 중파(仲派), 변휘(卞輝)의 계파(季派)로 갈라졌다.<ref>{{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LST_089_610_0195|초계 변씨}}</ref>
 
생원 변요(卞耀)의 손자 '''변고적'''(卞高迪)이 밀양에 세거(世居)하면서 '''[[밀양 변씨]]'''(密陽 卞氏)로 분파하였다. 변고적의 6대손 [[변옥란]](卞玉蘭)은 [[고려]]조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와 이조판서를 역임한 후 조선이 개국되자 검교판중추원사(檢校判中樞院事)에 임명되고 개국원종공신에 책훈되었다. 변옥란의 아들 [[변중량]](卞仲良)은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백형인 [[이원계]](李元桂)의 사위로서 1395년 원종공신(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변중량의 동생 [[변계량]](卞季良)은 [[조선 태종]] 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후 1420년(세종 2) 집현전 대제학이 되었고, 1426년에 우군도총제부판사(右軍都摠制府判事)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