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 바이트 제거됨 ,  10개월 전
편집 요약 없음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러일전쟁]](露日戰爭)에서는 [[일본제국 육군]]이 흑룡회 조직을 첩보, 사보타주, 암살 등에 활용하였다. 흑룡회는 거짓 정보와 선전을 퍼뜨려 일본 군부와 관련된 심리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또한 이들은 일본 군대의 통역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첩자인 [[아카시 모토지로]]를 지원하기도 하였고, [[아시아]]의 [[불교]] 세력과 동맹을 맺기도 하였다.
 
흑룡회는 한국 병탄한국병탄(韓國倂呑)에 앞장섰고, 이를 위해 [[일진회]](一進會)를 배후에서 조종하였다. 병탄 이후에는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한국인]] 학살을 주도하고 [[대동아공영권]]을 주장하였다.
 
흑룡회의 영수 우치다 료헤이는 중국으로 세력을 확대하려는 의도에서 중국 혁명과 공화제를 지지했다. 그가 신해혁명 기간에 쓴 "중국개조론"에서 "일본은 열국(列國)을 지도하여 중국을 개조하는 주도권을 장악해야 하고, 공화 정치를 건설하는 일을 찬성하는 방법으로 중국이 과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힘껏 고취했다. 그리고 1914년 10월에 기초한 "중국 문제 해결에 관한 의견서"에서 더욱 철저하에 그가 중국을 멸망시키려 하는 망령된 의도를 드러냈다. 그는 일본과 중국이 비밀군사동맹조약을 체결하되 조건을 걸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즉, 일본은 중국의 남만주· 내몽고· [[산둥 성|산둥]]· [[푸젠 성|푸젠]] 등에서 특수한 권리를 누리고, 중국의 군대· 군수공장· 해군· 재정· 교육 등은 모두 일본에게 위탁 처리하고, 중국이 타국에 차관 조차 할양을 할 경우 반드시 일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사실상 이것은 중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 의견서는 뒤에 일본 정부가 위안스카이 정부에 제출하여 중국을 멸망시키려 했던 [[21개조 요구]]의 토대가 되었다.<ref>왕효추 저, 신승하 역《근대 중국과 일본》고려대학교출판부 (2002) 82쪽 {{ISBN|8976414616}} </ref>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