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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년]](대업 8년)~ [[614년]](대업 10년) 사이 세번째 [[고구려]] 원정군을 일으키기 위해 군사를 모집할때 유무주는 원정군에 지원하고 군공을 세워 [[건절교위]](建節校尉)가 되었다가 마읍으로 옮겨간뒤 [[응양부교위]](鷹揚府校尉)로 옮겼다.
 
617년(대업 13년) 태수 [[왕인공]](王仁恭)의 시녀와 사통하였다가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고을의 호걸 [[장만세]](張万歲),[[양복염]](楊伏念),[[원군장]](苑君璋),[[울지공]](尉迟恭)과 함께 왕인공을 살해하였으며 군사를 일으켜 고을을 장악한뒤 스스로 태수를 자칭하고칭하고 창고를 열어 고을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그 뒤 유무주는 돌궐(突厥)과 손잡고 [[안문]](雁門),[[누번군|누번]](樓煩),정양(定襄) 등 여러 군을 공격하자 이에 조정에서는 [[호분장군]](虎賁將軍) [[왕지변]](王智辯)과 안문군의 군승 [[진효의]](陳孝意)에게 연합하여 유무주를 토벌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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