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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주는 세력이 더 강성해져 정양을 함락시킨뒤 안문으로 돌아오자 돌궐에서는 그를 정양가한(定楊可汗)에 책봉하였고 유무주는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한(漢), 연호를 천흥(天興)이라 하였다.
 
[[송금강]](宋金剛)이 [[두건덕]](竇建德)을 공격하였다가 역주(易州)에서 패하여 남은 무리를 이끌고 의탁해오자 유무주는 그를 송왕(宋王)으로 봉했다.[[619년]]([[무덕]] 2년) 3월 유무주는 남하하여 병주 황사령(黃蛇嶺)에 주둔하였는데 병주총관 [[이원길 (603년)|이원길]](李元吉)과 [[거기장군]](車騎將軍) 장달(張達)이 이에 맞서니 유무주의유무주 군사들은군은 크게전멸함으로써 패하고 전멸하였다패하였다.
 
같은해 5월에 다시 [[평요]](平遙)를 함락하고 6월에는 송금강에게 3만의 군사로 [[태원군|태원]](太原)과 [[개주]](介州)를 공격하게 하였다. 이에 [[당 고조]]는 [[우복야]](右僕射) [[배적]](裴寂)을 진주도 행군총관(晉州道 行軍總管)으로 임명하여 [[강보의]](姜寶誼)와 양쪽에서 공격하게 하였으나 크게 패하고 강보의는 전사하고 배적은 진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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