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얌나야 (토론 | 기여)
15번째 줄:
==독일연방공화국에서 자율주의의 역사==
독일에서의 자율주의 운동은 60년대 후반의 학생운동 와중에 의회 밖 좌파 운동(APO) 전통에서 등장했다. 서베를린의 코뮨1 운동을 비롯한 “Spaß 게릴라” 행동이나 소위 “자발성 운동”등의 신좌파들은 독일 자율주의의 내용과 행동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70년대의 좌파 테러리즘 그룹인 적군파(RAF)나 7월 2일 운동 및 혁명세포(RZ)그룹 등을 후원하거나 그들에게 동조했다. RZ 네트워크 안에는 (특히 서베를린에 기반을 둔) 사회혁명적, 자율주의적 성향의 분파가 존재했다.
 
하지만 오늘날 사용되는 “자율주의 (Autonomen)”, 좀 더 넓게는 “탈교조주의적 좌파”의 의미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그룹들은 1980년대 들어서 북서부의 대도시와 서베를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베를린에서는 1980년 여름에 자율주의자들의 총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1980년 5월 6일은 투쟁적 자율주의자들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며, 여러 그룹들이 자신들의 창립일로 삼는 날이다. 이 날 브레멘에서는 연방군의 신병 선서식이 열렸고, 이에 대항하는 격렬한 대중시위가 있었다. 수 천명의 반군사주의자들은 경찰투입에 폭력적으로 맞섰다.
 
70-90년대에서 오늘날까지 자율주의 그룹들은 빈번히 “신사회운동”의 데모나 직접행동에 참가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반전평화운동이나 핵발전소 반대 운동 등을 들 수 있다.
자율주의자들은 이런 직접행동의 목표나 내용에 따라 환영받기도 했지만 거부되기도 했다. 여타의 신사회운동과 자율주의 그룹들의 논쟁지점은 주로 자율주의 일각의 폭력투쟁 때문이었다. 이들 폭력 투쟁 그룹은 소위 “블랙 블록”(black bloc)으로 불리는데, 이 개념은 프랑크푸르트의 검찰청이 붙인 이름이다.
 
90년대 이후 자율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행동 영역에는 무엇보다 [[스쾃|건물점거]]를 통한 자율주의 공간운동, [[반파시즘]] 및 반인종주의 운동이 있고, “불법 인간은 없다”라는 구호 아래에서 난민과 이민자들에 연대하는 운동에도 자율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2000년대 후반에는 여러 대도시들에서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의 자율주의자들의 총회들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분열 / 반유대주의 논쟁==
자율주의자들은 처음부터 여러 상이한 급진적인 의회 밖 좌파들이 뒤섞여 있는 혼합체였다.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상이한 노선이 주도했다. 어떤 시기에는 아나코생디칼리즘을 추종하는 그룹들이 강했고, 또 어떤 시기에는 적군파와 친화적인 반제국주의 그룹이 자율주의 그룹을 주도하기도 했다. 즉 자율주의 그룹은 언제나 매우 다종적인 그룹이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