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약탈 (455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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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우스는 100군데가 넘는 자상(刺傷)을 입고 황제의 면전에서 즉사하였다. 특별한 대책없이 아이티우스를 죽인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원로원 의원인 페트로니우스의 부인을 강간하는 파렴치한 일도 저지르고 만다. 분개한 페트로니우스는 복수를 위해 아이티우스의 부하였던 훈족 옵틸라(Optila)와 트라우스틸라(Thraustila) 에게 황제 암살을 사주하였다. 455년 3월 16일에 두 사람은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마르스 벌판에서 벌어진 군사 경기를 보고 즐기고 있을때 암살을 하였다. 황제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아이티우스의 옛 부하들이었기 때문에 황제를 도우러 나서지 않았다.
 
==== 연이어 살해당하는 신임황제와 치졸함신임황제 ====
황제 발렌티니나누스 3세의 암살을 사주했던 페트로니우스가 원로원의 승인을 얻어 황제에 즉위하지만 무능함에 극치를 보여주고 말았다. 반달족의 침공소식이 전해지자 원로원 의원들에게 도망치라고 한후에 자신도 도망을 치다가 백성들이 던진 돌 세례를 맞고 죽고 말았다. 황제 페트로니우스는 죽기전까지 약 3개월 가량 재위에 있었는데 무능하였을뿐만 아니라 사적으로도 치졸한 행동을 일삼았다. 정통성 보강 차원에서 전임 황제의 미망인과 정략결혼을 하였는데 황후를 복수차원에서 폭행 하였다. 그러자 증오심에 불탄 황후 에우독시아는 반달족 게이세리크에게 남몰래 도움을 청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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