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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후에 웅치의 긴 고갯길은 [[조선]]군의 시체로 덮였다.<ref name="yiyi208"/>
 
[[웅치]]에서 관군과 의병이 패하자 전 성균관 정6품을 지냈던 [[이정란]](李廷鸞)이 [[전주|전주성]] 안으로 들어가 백성들을 수습하고 전라감사 이광도 성을 굳게 지켰다. 결국 [[안코쿠지 에케이]]는 [[금산군|금산]]으로 후퇴하나 도중에 웅치에서 전사한 조선군의 시체를 모아 큰 무덤을 만들어주고 조 조선국충간의담조조선국충간의담(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는 비석을표목을 세워주어 그들의 충절을 기렸다.
 
=== 웅치 전투의 의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