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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토지정책 ===
1755년 사형당한 유수원 선생이 <우서>에서 비판한 대로, 다산 당시 농토의 100%를 사대부가
[[중농주의]] [[실학자]]로서 토지의 무상 분배, 공동 노동-공동 분배를 함으로써 토지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한 [[사회주의]] 토지 정책인 [[여전론]]과 [[정전론]]을 상상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정전론은 토지를 우물 정(井)으로 나누면 모두 9구역의 땅이 나오는데, 이중 8구역은 8명의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어 농사를 짓도록 하고, 1구역은 공동 노동을 하여 국가공동체의 복리를 위한 비용인 [[세금]]을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전론은 여(이문 여,閭)를 농민들이 공동 노동, 공동 분배하는 사회주의 토지정책이다. 그렇지만 일한 만큼 나눠주는 정책이니 현재 북한과 같은 토지정책은 아니다. 정약용 선생이 자신의 사회주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한 점진적인 방법이 [[1819년]]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군에서 유배를 할 때에 상상한 정전론이다.<ref>《교실밖의 국사여행》/역사학 연구소/사계절 164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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