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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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인과 유고슬라브인====
{{참조|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의 세르비아인 학살}}
나치는 히틀러의 의중에 따라 발칸에서 58만 1천명의 유고슬라브인을 학살했다.<ref>[[Vladimir Žerjavić|Žerjavić, Vladimir]]''Yugoslavia manipulations with the number Second World War victims'', Zagreb: Croatian Information center,1993 {{ISBN|0-919817-32-7}} [http://www.hic.hr/books/manipulations/ HIC.hr] and [http://www.vojska.net/ww2/losses/ Vojska.net]</ref><ref>[[Bogoljub Kočović|Kočović, Bogoljub]]-Žrtve Drugog svetskog rata u Jugoslaviji 1990 {{ISBN|86-01-01928-5}}</ref><ref>Tomasevich, Jozo. ''War and Revolution in Yugoslavia, 1941–1945: Occupation and Collaboration.''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1. {{ISBN|0-8047-3615-4}}</ref> 이에는 크로아티아의 파시스트 동맹으로 반유고슬라비아 분리주의자인 우스타세(Ustase)가 합세하였다. 히틀러는 발칸에서 유고슬라브인을 모두 학살하라는 직접적인 명령은 내리지 않았지만 ‘세르비아인들은 인간인종 이하쓰레기(Untermensch)’라고 표명함으로써 간접적인 학살 명령을 내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유고슬라비아에서도 세르비아인들이 가장 많이 희생되었다. 나치의 동조자인 유스타세는 별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나치의 유고슬라비아 점령지역 괴뢰정권으로서 세르비아인들을 체포하는데 앞장섰다. 보스니아인과 크로아티아인도 상당수가 희생되었다. 주로 야세노바크(Jasenovac)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 유고슬라비아의 우스타세 당국은 1941년부터 45년 사이에 크로아티아에 여러 곳의 강제수용소를 설치하였다. 이곳에서 세르비아인, 유태인, 집시, 무슬림(보스니아인), 그리고 가톨릭교도가 아닌 소수민족들이 끌려와 죽임을 당하였다. 물론 크로아티아의 정치범들과 반종교인들도 희생되었다.
 
니아드 할릴베고비치(Nihad Halilbegovic)가 주도한 최근 연구인 ‘야세노바크 강제수용소의 보스니아인’(Bosniaks in Jasenovac Concentration Camp)에 의하면 약 10만 3천명의 보스니아 무슬림 슬라브인들이 홀로코스트 기간 중에 나치와 크로아티아 분리주의운동인 [[우스타샤]]에 의해 야세노바크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되었다고 한다. 보스니아인들은 집시라는 명목으로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