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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임성태자 부여의조'''는 [[백제]] [[위덕왕]]의 셋째 아들이자 [[위덕왕]]의 아버지 [[성왕]]<ref>일본에서는 聖明王으로 부른다.</ref>의 셋째 아들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토요타]](豊田)씨 등 [[오우치 씨|오우치]](大)씨의 현손들이 14대조로 주장하고 있다.<ref name=autogenerated2/> [[611년]](스이코 천황 19년) [[3월 2일]] [[야마구치현]]에 상륙해 [[쇼토쿠 태자]]에게 [[타타라 씨|타 라]](多多良氏)라는 성씨와 [[스오 국]](周防) [[다타라하마타타라하마]](多々良浜, 현 [[야마구치 현]] [[호후 시]])에 영지를 하사받고 정착했다고 한다. 타타라씨는 12세기에 [[오우치]](大內)가 됐고 한반도와 무역을 거의 독점하면서 일본 최대의 세력으로 성장한다. 중세 일본에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들은 [[1557년]] 멸문을 당했고 살아남은 방계 후손들이 막부의 [[하타모토]] 내지는 소영주로 살아남았으며, 또 어떤 이들은 토요타(豊田)로 성씨를 바꾼다.
 
오우치 씨의 후예들의 얘기에 따르면 임성태자는 [[597년]] [[타이완]]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백제]]의 우수한 문화예술을 일본에 전래<ref>임성 태자는 성왕이 신라의 복병에게 피살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대만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백제의 우수한 문화예술을 일본에 전래한 대표적인 왕족으로 일본 역사서에 기록돼 있다.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904180095</ref>하고 [[일본]][[불교]] 융성에 기여했으며 [[제철]]기술을 전파하였다 한다. 당시 스오노쿠니, 즉 오늘날의 [[야마구치현]]에는 오우치 씨들의 현손들이 임성태자가 [[백제]]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피리라고 주장하는 물건을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