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태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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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
유골은 [[야마구치현]] [[야마구치 시]](山口市) 쇼후쿠지(乘福寺)<ref>야마구치현(山口県) 야마구치시(山口市) 오우치미호리(大內御堀) 4쵸메(丁目)</ref>에 안치됐다. [[백제]] 멸망 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어느 곳에도 등장하지 않아 잊혔다가, 14세기 말엽인 [[1398년]](조선 정종 1년) [[7월]] 당시 서일본의 패자였던 [[오우치 요시히로]]가 조선 조정에 [[성명왕]]의 셋째 아들 임성태자의 족보를 입증해 달라는 것과 토지를 찾아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조선 정종|정종]]에게 정식으로 보낸 사실이 정종실록에 기록되면서 한국에 알려졌다. 이후에도 [[1453년]](조선 단종 1) 등 대내전은 사자를 조선 조정에 보내 족보 입증을 요청하기도 했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