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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 대녕(현재의 [[충칭 시|중경시]] [[우시 현|무계현]]) 출신. [[감숙제독]] [[양우춘]] 휘하에서 [[칭하이 성|청해]]·[[신강]] 일대의 전쟁에 종군했다. 그 뒤 [[직례총독]] [[보르지기트 키샨]]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1833년 개주협부장이 되었다. 1847년 [[사천제독]], 1851년 [[광서제독]]을 역임했다.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자 광서성에서부터 태평군을 추격했고, [[흠차대신]]에 임명되었다. 1853년 태평군이 [[난징|남경]]을 점령, 천경으로 개칭하자 향영은 천경 코앞에 강남대영을 축성하고 키샨의 강북대영과 함께 천경을 포위하는 체제를 취했다. 대치 3년차인 1856년 6월 태평군이 [[제1차 강남대영 공략전]]에 성공, 강남대영은 파괴되고 향영은 [[단양 시|단양]]으로 후퇴해 [[태일강진일강]]의 태평군과 격전을 벌였다. 같은 해 8월 사망. 자살이라는 설도 있다. 후임 흠차대신으로는 [[강남제독]] [[허셔리 호춘]]이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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