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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는 20만 병력의 일본군을 조선에 대거 보내어 조선을 침략했다. 조선은 초반 [[제승방략]]체제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였고, 일본군의 [[백병전]] 능력과 신무기인 [[조총]]에 크게 고전하였다. [[부산진성]]의 [[정발 (1553년)|정발]]과 [[동래성]]의 [[송상현]]이 삽시간 만에 일본군에게 무너졌다. 그리고 상주의 [[이일]]과 충주 탄금대에서 진을 치고 있던 [[신립]]의 군대도 일본군이 무장한 조총에 의해 궤멸당한다. [[조선 선조|선조]]는 수도 한양을 버리고 압록강변에 있는 [[의주]]까지 피난을 가야 했다. 일본군은 개전 20여 일 만에 [[한양]]에 입성하였고, 임진강 방어선도 간단히 뚫은 채 [[평양]]까지 손쉽게 점령하였다.
 
이 기세로 가면 [[의주]]도 점령될 것 같았으나,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옥포 해전|옥포]]·[[사천 해전|사천]]·[[한산도 대첩|한산도 해전]]에서 일본 [[해군|수군]]을 크게 격파해버림으로써, 일본군은 수군을 통한 보급작전에 큰 지장을 받게 되었고 더 이상 북진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일본군은 [[행주산성]]에서 권율에게 크게 격파당했고([[행주대첩]]) 그리고 삼남 지역에서도 조선 각지의 [[의병]]과 관군의 반격을 받았고, 명나라에서도 [[이여송]]이 지휘하는 대군을 파병하였다. [[조선군]]은 [[명나라]]의 지원군에 힘입어 일본군을 몰아내어 그 세력을 [[경상도]] 해안 일대로 후퇴시켰다.
 
그러나 5년 간의 지리멸렬(支離滅裂)한 휴전협상이 실패하자,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였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사]](병으로 죽음)로 일본군에게 철수 명령이 떨어졌고, [[노량 대첩]]을 끝으로 7년의 [[임진왜란]]도 막을 내렸고, [[노량 대첩]]에서 일본군에 큰 타격을 주었으나 [[이순신]]이 이 전투에서 총을 맞고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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