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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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에 관한 기록은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저서인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고백록]](''Confessiones'')과 제자 [[포시디우스]]가 쓴 전기를 통해 [[키케로]] 이후의 유명인물로서 유일하게 매우 자세히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가 쓴 책에 대한 자평인 [[재고록 (아우구스티누스)|재고록]](''Retractiones'')에서 그의 삶의 흔적을 많이 엿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오늘'''날의 [[알제리]]에 해당하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북아프리카]]의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였으나, 어머니 [[히포의 모니카|모니카]]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어머니 모니카가 아우구스티누스를앙기모띠스를 교육했으나 어렸을 때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향과 인근 도시 [[마다우로스]] 혹은 [[마다우라]](Madaura)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후, [[카르타고]]에서 공부를 하려 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잠시 학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370년]] 집안의 사정이 나아지자 아버지는 16살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수사학을 배우게 하기 위해 [[카르타고|카르타]]'''[[카르타고|고]]로 유학보냈다. 카르타고에서 그는 [[키케로]]의 글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철학]]에 심취하게 된다<ref>[[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고백록]] 3, 7; 행복론 4; 독백론 1, 17</ref>.
 
어머니 모니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자기와 같은 [[그리스도교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당시 철학에 심취해 있던 그는 [[마니교]]의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교리에 매력을 느껴 마니교도로서 10여년을 머무르기도 하는 등, 마니교를 지지하여 실질적으로 [[가톨릭교회]]를 거부했다. 또, 이 시기([[371년]]) 열입곱 살에 그는 한 젊은 여성과 동거생활을 시작하여 14년 동안 같이 살면서 아데오다투스({{llang|la|Adeodatus|신으로부터 주어진}})라는 아들을 낳기도 한다. 이 아들은 [[389년]] 어린 나이에 죽을 때까지 아버지 품에 살았다. 이러한 아들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던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과 절교를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