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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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호칭: 세계북한연구센터에 의하면 북한은 일본이 왕조체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천황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KT0n_4fObY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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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호칭 ==
=== [[헤이안 시대]] 이전 ===
'천황'이라는 칭호가 생기기 이전에 고대 [[야마토(大和)]]에서 수장이라는 뜻의 칭호를 국내에서는 「오오키미오키미(大君)」([[치천하대왕]]) 또는 천왕(天王)이라 불렀고, 대외적으로는 '''왜왕'''('''倭王'''), '''왜국왕'''('''倭國王'''), '''대왜왕'''('''大倭王''') 등으로 칭했다. 고대에는 스베라기(須米良伎), 스메라기(須賣良伎), 스메로기(須賣漏岐), 스메라미코토(須明樂美御德), 스메미마노미코토(皇御孫命) 등으로 불렸다.
 
'천황'이라는 칭호가 성립된 것은 7세기 후반의 일로 [[다이호 율령]](大宝律令)에서 「천황(天皇)」이라는 칭호를 법제화하기 직전인 [[덴무 천황]](天武天皇) 또는 [[지토 천황]](持統天皇)의 시대의 일로 보는 것이 통설인데, 시기상 7세기 후반은 중국 [[당나라|당]](唐)의중국의 [[당 고종|고종]](高宗)이 '천황'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직후의 일이기도 했다.<ref>당 고종의 시호가 「천황대성대홍효황제(天皇大聖大弘孝皇帝)」였던 것 외에도 남한(南漢)의 초대 황제 [[유습]](劉龑)이 붕어한 뒤 「천황대제(天皇大帝)」라는 시호로 기록된 것을 중국의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덴무 천황(天武天皇)이천황이 천황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최초의 인물로 다이호 율령에서 천황의 칭호가 법제화되고 덴무 천황(天武天皇)이천황이 붕어한 뒤에도 그러한 칭호가 세습되었다.</ref> [[태평양 전쟁]] 이전의 사학자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는 [[스이코 천황]](推古天皇) 시대에 성립되었다는 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13세기 이후 「천황」이라는 칭호의 사용은 잠시 폐해지기도 했으나, 19세기 초에 다시 사용되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본 고대의 한자음 차자표기에서는 「덴와(てんわう)」로 표기된다. 「덴와(てんわう)」는 중세를 지나며 「덴노(てんのう)」로 변화되었다.
 
「천황」이라는 칭호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 고대 중국에서 [[북극성]](北極星)을 신격화하여 가리키던 [[도교]](道教)의 용어 「천황대제(天皇大帝)」 또는 「부상대제동황부(扶桑大帝東皇父)」에서 따왔다는 설.
* 당 고종이 도교적 용어인 「천황」을 칭한 것을 일본에서도 수입해서 썼다는 설.
* 5세기경에 대외적으로 「가외천왕(可畏天王)」, 「귀국천왕(貴國天王)」 등 단순히 「천왕(天王)」 등으로 불리던 것이 스이코조(또는 덴무조)에 「천황」이 되었다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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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 ・ 금석문 !! 연대 !! 발췌 !! 출전 !! 현대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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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견당사(遣隋使)]]의 국서
| 607년 || 日出處'''天子'''致書日沒處天子無恙 || 《[[수서]]》(隋書)(636년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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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류지 금당 약사여래상 광배명</br>(法隆寺金堂薬師如来像光背銘)
| 607년 || 池辺大宮治天下'''天皇''' || || 실제로는 607년보다는 조금 뒤인 [[하쿠호 시대]](白鳳時代)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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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토쿠 태자가 수에 보낸 국서
| 608년 || 東'''天皇'''敬白西皇帝 ||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 성립) || 《일본서기》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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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코지 장륙석가상 광배명</br>(法興寺丈六釈迦像光背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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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이라는 칭호는 [[율령(律令)]](「의제령儀制令」)에 규정이 있는데, 《양로율령》(養老律令) 천자조(天子条)에 따르면 제제사에서는 ‘[[천자]]’(天子), [[조서]]에서는 ‘천황’, 대외적으로는 ‘[[황제]]’, 신하가 직접 주달할 때에는 ‘[[폐하]]’, 황태자 등 후계자에게 양위한 경우에는 ‘태상천황’(太上天皇), 외출시에는 ‘승여’(乘輿), 행행시에는 ‘거가’(車駕) 등으로 부르는 7개의 호칭이 정해져 있었지만, 이러한 표현은 표기시에만 사용할 뿐, 어떻게 쓰더라도 읽는 것은 당시의 풍속을 따라 ‘스메미마노미코토’({{lang|ja|すめみまのみこと}})나 ‘스메라미코토’({{lang|ja|すめらみこと}}) 등으로 칭한다(특히 제사 지낼 때에는 「天子」라 쓰고 「스메미마노미코토」로 읽었다). 천황의 죽음은 붕어(崩御)라 했고, 재위중인 천황은 금상 천황(今上天皇), 사망한 뒤 추시되는 시호가 정해질 때까지는 대행 천황(大行天皇)이라 불렸다. 배우자는 「황후(皇后)」. 천황 자신이 칭할 때는 「[[]](朕)」, 신하들로부터는 「[[지존]](至尊)」이라 불렸는데, 모두 중국의 제도를 답습한 것이었다.
 
[[나라 시대]](奈良時代)인 [[덴표호지]](天平宝字) 6년에 [[진무 천황]](神武天皇)부터 지토 천황까지의 41명의 천황 및 [[겐메이 천황]](元明天皇) ・ [[겐쇼 천황]](元正天皇)에 대한 한풍(漢風) 시호가 [[오우미노 미후네]](淡海三船)에 의해 일괄적으로 바쳐졌음이 《쇼쿠니혼키[[속일본기]](続日本紀)에 기술되어 있지만, 이것은 당대의 칭호와는 관계없는 시호일 뿐이다.
 
=== [[가마쿠라 막부]]에서 [[에도 막부]]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