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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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정씨는 대대로 호장이었으나 3세(三世)인 [[정목]](鄭穆)이 고려 문종(文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정2품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오르고, 정목(鄭穆)의 아들로 그의 네 아들인 정제(鄭濟)․ 정점(鄭漸)․ 정택(鄭澤)․ 정항(鄭沆)이 모두 문과(文科)에 급제하면서 명족(名族)이 되었다. 정선조(鄭先祚)의 후손은 계속 동래(東萊)에 남아 향리직(鄕吏職)에 종사하였다.
 
동래 정씨(東萊 鄭氏)는 [[조선시대]] 문과(文科) 급제자 198명, 상신(相臣) 17명, 대제학(大提學) 12명, 호당(湖堂) 10명, 공신(功臣) 6명, 판서(判書) 20여명, [[종묘배향공신]] 무려 3명이나3명을 배출했다. 왕족인 전주 이씨(22명)와 세도정치를 펼친 안동김씨(19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정승(17명)을 배출한 가문이다.
 
이밖에도 왕손인 전주이씨(22명), 세도정치를 펼친 안동김씨(19명)에 이러 세 번째로 많은 정승(17명)을 배출한 명문가이다. 나아가 그 외에도 대제학(大提學) 12명, 호당(湖堂) 10명, 공신(功臣) 6명, 상신(相臣) 17명, 판서(判書) 20여명, 문과(文科) 급제자만 198명을 배출하였다.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