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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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 ===
삼국 통일 이후의 신라에서는 고구려와 백제 유민에 대한 포용 정책과 함께 [[당나라]]와의 교류가 융성하면서 복식 또한 매우 발달했다. 특별히 골품제에 바탕을 둔 신라 사회와 마찬가지로 신분에 따라 문양이나 착용 여부가 정해졌다. 귀족 부인들에게 당나라식 복식이 허용된 것은 신라가 통일을 이루기 조금 전인 문무왕 4년(664년)부터이며 삼국시대와 달리 어깨끈이 있는 치마를 저고리 위에 입은 형상이 [[경주시]] [[용강동 (경주시)|용강동]]에서 발견된 바 있다.<ref name="임경화"/> 관복제도가 정식으로 당나라에서 들어온 시기임과 동시에 여자 한복에 대해서도 당나라식 특성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귀족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ref name="국민일보"/><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1&aid=0000016765 설한복은 은은한 색상으로] 문화일보 2003-02-11</ref>하지만 당나라식 복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문헌에만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의 중국 복식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고 당나라때의 복식의 기록이 소수의 벽화에만 남겨져 있어서 실제로 신라의 복식이 당나라의 복식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