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신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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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ref>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 시대의 승려 보각국사(普覺國師) [[일연]](一然, 1206년~1289년)이 [[충렬왕]](忠烈王) 7년(서기 1281년)에 인각사(麟角寺)에서 쓴 삼국 시대의 역사서이다. </ref> 기이(紀異) 제1편에는 《[[고기 (역사서)|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인용문|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ref>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말한다.</ref> [[환웅]](桓雄)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ref>삼위산과 태백산을 말한다는 주장도 있고, 삼위산 중 하나인 태백산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병도]]는 《[[삼국유사]]》를 번역하면서, "삼위는 三高山의 義요, 태백은 그 중의 하나이다."라고 썼다.</ref>을 내려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ref>삼위산과 태백산을 말한다는 주장도 있고, 삼위산 중 하나인 태백산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병도]]는 《[[삼국유사]]》를 번역하면서, "삼위는 三高山의 義요, 태백은 그 중의 하나이다."라고 썼다.</ref>을 내려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 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고조선)|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면서 항상 신웅(환웅)에게 빌기를, “원컨대 (모습이) 변화하여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기(忌)<ref>기(忌)는 사전적 의미로 '꺼리다', '싫어하다'의 뜻이다.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으며, 싫지만 참는다는 뜻으로 해석되며,</ref>하였는데 삼칠일(三七日 :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기하지 않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전해지고,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가지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해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가지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해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단군왕검(唐高, [[요 (군주)|요]][堯])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 (고조선)|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고조선|조선]](朝鮮)이라 칭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옮겼으니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며달(今㫆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1천 5백 년이었다.
 
단군왕검(唐高, [[요 (군주)|요]][堯])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 (고조선)|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고조선|조선]](朝鮮)이라 칭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옮겼으니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며달(今㫆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1천 5백 년이었다.
[[주나라|주(周)]]나라의 호왕(虎王, [[서주 무왕|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 (고조선)|기자]](箕子)를 [[기자조선|조선]](朝鮮)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阿斯達)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수(壽)가 1천 9백 8세이었다 한다.<ref>[[일연]] 외 저, [[이병도]] 외 역, 〈[[삼국유사]]〉, 《한국의 민속·종교 사상》, 1990년, (주)삼성출판사, 45~47쪽.</ref>}}
 
[[주나라|주(周)]]나라의 호왕(虎王, [[서주 무왕|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 (고조선)|기자]](箕子)를 [[기자조선|조선]](朝鮮)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阿斯達)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수(壽)가 1천 9백 8세이었다 한다.<ref>[[일연]] 외 저, [[이병도]] 외 역, 〈[[삼국유사]]〉, 《한국의 민속·종교 사상》, 1990년, (주)삼성출판사, 45~47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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