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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서가 제조하는 안동소주는 쌀로 만든 누룩을 사용하고, 전술을 만들 때 3단 사입을 거쳐서 28일간 술을 빚어 청주를 만든 다음 청주를 [[중탕]] 방식으로 증류하여 만드는데, 100일 이상의 정제 과정과 숙성을 거치므로 누룩 냄새 불 냄새가 없는 은은한 곡주향이 나는 부드러운 안동소주가 된다.
 
3단사입이란 박재서의 안동소주 고유의 방식으로 백미 5kg과 누룩 1kg에 물 7.5L로 주모를 잡아 20℃~25℃로 4~5일간 두었다가 백미 30kg과 누룩 6kg에 물 45L를 섞어 2단 사입한 후 4일뒤 다시 백미 65kg과 누룩 13kg에 물 98L를 섞어 3단 사입한 후 15~20일간 신선한 곳에서 26℃정도 온도가 유지되도록 발효시키는 것이다.<ref name="sojusite">[http://www.andongsoju.co.kr/ 안동소주] {{웨이백|url=http://www.andongsoju.co.kr/ |date=20091221103542 }}, [http://www.andongsojumall.com/ 안동소주몰], [http://www.adsoju.com/ 명인 안동소주]</ref>
 
== 유래 ==
[[파일:안동소주 호리병(andongsoju).jpg|섬네일|200px|명인박재서안동소주 제품]]
[[파일:Korean distilled liquor-Andong soju-01.jpg|섬네일|조옥화 안동소주]]
안동소주는 신라시대부터 그 기원을 잡는다. 증류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여왔다. 신라 괘릉에서 출토되는 이국적 용모를 한 무인상과 페르시아 유리잔은 신라와 아랍과의 관계를 증명한다.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이 전래되어 왔다.또한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증류식 술을 마셔왔다고 하는데, 신라와 당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증류식 술이 신라시대부터 마셔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f>[{{웹 인용 |url=http://www.andongsoju.co.kr/ |제목=민속주 안동소주 (경북무형문화재12호, 전통식품명인20호 조옥화 할머니가 만듭니다)<!-- 봇이 따온 제목 -->] |확인날짜=2009-12-2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091221103542/http://www.andongsoju.co.kr/ |보존날짜=2009-12-21 |깨진링크=예 }}</ref>
 
안동소주의 직접적인 기원은 몽골군에 의해 안동에 소주가 전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간섭기 고려와 원이 연합하여 일본정벌을 하던 때에 특히, 1281년 2차 일본정벌 때 충렬왕이 안동에 행궁을 설치하고 30여일 이상 머문 적이 있다. 이때에 충렬왕은 안동행궁에서 일본정벌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받고, 원나라에 장수를 파견하여 이 사실을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때 퇴각하던 원나라 군사도 안동을 경유하여 돌아갔다. 따라서 안동지역소주는 충렬왕이 안동에 머물던 1281년이었을 것이라 판단된다.<ref>배영동《지방사와 지방문화》,380p</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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