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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리콴유]](Lee Kuan Yew) 수상과 [[유솝 빈 이스학]](Yusof bin Ishak)에 의해 자치주가 되었으며, 1963년에는 [[말레이시아]]에 합병되었다. 그러나 인구의 대부분이 중국계인 싱가포르와 인구의 대부분이 말레이인인 [[말레이시아]]와의 마찰로 2년 후 독립하게 되고, [[1965년]] [[8월 9일]] 독립 국가로서 새로운 국가를 시작하였다. [[리콴유]]가 초대 총리로 집권하였다.
 
새로운 국가로서 [[싱가포르]]는싱가포르는 당면한 실업과 자급자족의 문제가 심각했다. 그러나 [[1959년]] [[6월 5일]]부터 [[1990년]] [[11월 28일]]까지 [[리콴유]]의 장기 집권 기간 동안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루어 홍콩에 버금가는 경제력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리콴유]] 내각 주도의 경제 사회 정책과 관련된 집행들은 공산주의보다 더 강하고 완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0년]] [[11월 28일]]에 [[고촉통]](Goh Chok Tong)이 [[싱가포르의 총리|총리]]직을 이양받았으며, [[2004년]] [[8월 12일]]에는 [[리콴유]]의 맏아들인 [[리셴룽]](Lee Hsien Loong)이 [[2006년]] [[5월 6일]]과 [[2011년]] [[5월 7일]]과 [[2015년]] [[9월 11일]]에 실시하는 [[싱가포르]] 총선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3, 4, 5, 6대 [[싱가포르의 총리|총리]]로 다시 임명이 되면서 현재까지 내각을 이끌고 있다.
 
== 자연 환경 ==
 
==== 대한민국과의 관계 ====
대한민국은 1970년 12월 '''싱가포르'''에싱가포르에 통상경제대표부를 개설했다. 이 대표부는 1971년 7월 총영사관으로 승격되었다가 1975년 8월 대사관으로 승격됐다. 양국은 1972년 항공협정을 체결했다. 1979년 11월에는 이중과세방지협정이 체결되었다. 특히 건설업계의 교류가 활발한데 '''싱가포르'''의 [[싱가포르 창이 국제공항|창이국제공항]]을 비롯한 많은 주요 건물을 한국 건설업체가 건설하였다.
 
양국은 서로 10위권 내의 교역 상대국이며, 주로 전자전기제품, 기계류가 수출입 품목이며, 특히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에의 투자가 많이 이루어졌다. 2000년에 정점을 이루다가 줄어들었으나 현재는 다시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한민국의 대(對)싱가포르 수출은 152억4420만USD, 싱가포르의 대(對)대한민국 수출은 78억4953만USD(각 2010년)에 달하여, 싱가포르는 대한민국에 있어서 제5위의 수출국, 제14위의 수입국이다.<ref>{{웹 인용 | url=http://stat.kita.net/ | 제목=국가별 수출입 | 출판사=한국무역협회 }}</ref>
{{본문|싱가포르의 경제}}
[[파일:Orchard Road light up Xmas 2005.JPG|섬네일|왼쪽|180px|오차드 로드]]
'''싱가포르'''의싱가포르의 경제정책은 국가에서 통제하는 [[권위주의]]식 [[자본주의]]이다. 2009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은 1770억$로 43위의 해당하는 경제규모이며, 1인당 GDP는 37000$가 넘는 부유한 국가이다. 싱가포르는 고도로 발달된 시장 기반 경제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수출입 무역에 의존하여 발달하여 왔다. 제조업도 발전한 편인데, 2005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의 28%가 제조업으로부터 나왔다. 주요 생산품은 전자, 석유화학, 기계공학과 의약품 제조이다.
 
싱가포르는 런던, 뉴욕, 도쿄에 이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외환시장을 가지고 있으며, 사업가들에게 가장 친화적인 정책과 환경으로 평가 받고 있다. [[홍콩]], [[대한민국]], [[중화민국]]과 함께 싱가포르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NIEs)으로 불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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