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350 바이트 추가됨 ,  1개월 전
전국적으로는 1987년 6·29선언 때에 32종이던 일간지가 1992년 6월 말 현재 117개로 일간신문이 92개, 기타 일간이 25개로 5년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주간은 1987년 6월 29일에 201종이던 것이 1,561개(격주 포함:유가지 1,092)로 약 7배(1,360종)가 증가했다. 월간은 2,745개(유가지 1,518), 격월간 641개(유가지 123), 계간 938개(유가지 252), 반년간 220개(유가지 52), 연간 158개(유가지 113)으로 모두 6,380개(유가지 3,271)이다. 이는 1987년 6·29 이전의 2,236종과 비교하면 무려 185%인 4,144종이 늘어난 것이다.<ref name="글로벌_1"/>
 
언론기관의 증가에 따라 언론인구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980년대의 언론인구는 완만한 증가추세를 보여오다가 1988년 이후에 신문 발행의 자유화와 더불어 급격히 늘어났으며, 카르텔 체제의 붕괴로 주둔하면서, 증면 체제에 따라 휴일판 및 주말 타블로이드 부록 발행에 이르고 있다.
언론기관의 증가에 따라 언론인구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980년대의 언론인구는 완만한 증가추세를 보여오다가 1988년 이후에 신문 발행의 자유화와 더불어 급격히 늘어났다. 195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언론인구를 개관하면 중앙 6대 일간 신문사의 조직구성원 규모는 양적으로 급속한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중앙 6대 일간지의 임원진을 제외한 평균 종업원수는 1955년에는 139명에 불과했으나, 1967년에는 384명, 1977년에는 742명, 그리고 1987년에는 1,080명으로 늘어나 지난 30여 년 동안 약 8배의 증가를 나타내었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는 본지 편집부문 종사자는 거의 늘어나지 않은데 비해, 업무부문 종사자는 거의 두배로 증가했다. 1980년대의 통계에서는 통폐합이 있기 전인 1980년에는 신문 통신 방송사 64개에 종사하던 언론인이 1만 8,703명이었는데 통폐합 이후 언론기관 중 15개의 폐간으로 종사자는 1,900여명이 감원되어 1만 6,786명으로 줄어들었다. 그 후 완만한 증가로 1987년에는 2만명이 약간 넘는 수준에 이르렀다.그러나 1988년에는 2,143명이 늘어났고 1989년에는 6,610명이 증가하여 전체 인구는 3만명에 육박했다.<ref name="글로벌_1"/>
 
하루당 발행 면수는 16면에서 48면 이상으로 게재하고 있으나, [[광고]] 지면을 늘어나는 추세가 [[종이|종이량]] 수요의 중대한 자원 낭비로 우려도 많다.
 
언론기관의 증가에 따라 언론인구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980년대의 언론인구는 완만한 증가추세를 보여오다가 1988년 이후에 신문 발행의 자유화와 더불어 급격히 늘어났다. 195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언론인구를 개관하면 중앙 6대 일간 신문사의 조직구성원 규모는 양적으로 급속한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중앙 6대 일간지의 임원진을 제외한 평균 종업원수는 1955년에는 139명에 불과했으나, 1967년에는 384명, 1977년에는 742명, 그리고 1987년에는 1,080명으로 늘어나 지난 30여 년 동안 약 8배의 증가를 나타내었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는 본지 편집부문 종사자는 거의 늘어나지 않은데 비해, 업무부문 종사자는 거의 두배로 증가했다. 1980년대의 통계에서는 통폐합이 있기 전인 1980년에는 신문 통신 방송사 64개에 종사하던 언론인이 1만 8,703명이었는데 통폐합 이후 언론기관 중 15개의 폐간으로 종사자는 1,900여명이 감원되어 1만 6,786명으로 줄어들었다. 그 후 완만한 증가로 1987년에는 2만명이 약간 넘는 수준에 이르렀다.그러나 1988년에는 2,143명이 늘어났고 1989년에는 6,610명이 증가하여 전체 인구는 3만명에 육박했다.<ref name="글로벌_1"/>
 
== 각주 ==
익명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