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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CIA는 한국 전쟁 발발 엿새 전의 보고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남침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소련의 위성국가로 독자적인 전쟁 수행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CIA의 예측과는 달리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백악관은 그 책임을 물어 CIA를 전쟁 발발 후 며칠간 백악관 안보회의에서 배제했고 두 달 뒤에는 CIA의 수장을 교체했다.<ref name="cia_mistake">[http://news.kbs.co.kr/world/2010/06/16/2113578.html#// CIA 한국전 잇단 오판, 수장까지 교체] {{웨이백|url=http://news.kbs.co.kr/world/2010/06/16/2113578.html#// |date=20131111051837 }}, KBS, 2010년 06월 16일</ref> 반공주의자인 [[미국]]의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 고문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38도선을 시찰(1950년 6월 20일)하는 등<ref>{{뉴스 인용|url=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006190020910100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0-06-19&officeId=00020&pageNo=1&printNo=8300&publishType=00010 |출판사 = 동아일보 | 날짜 = 1950-06-19 |제목 =덜레스氏 38線視察 |인용문 = <!--지난 十七日 來韓하여 同日下午五時에는 景武臺로 李大統領을 禮訪뒤이어 同夜에는 貞洞에 있는 “무치오”大使官邸에서 同大使晩餐會에 參席하는 等 繁多한 訪韓第一日의 日程을 마친 國務省顧問 “존{{.cw}}포스터{{.cw}}덜례스” 一行은 第二日인 十八日上午八時에는 政府側의 案內下에 東北”아시아”局長 “엘리슨”氏를 帶同하고 汽動車로 議政府를 거처 東豆川方面의 三八線接境을 視察하고 下午三時傾歸京하였다.-->}}</ref> [[미국]]의 북침에 대한 위협을 느낀 [[김일성]]이 먼저 남침을 결정했다는 주장도 있다.
1950년 6월 24일 육군본부 정보국(국장 [[장도영]], 북한반장 [[김종필]], 문관 [[박정희]])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규모 병력이 38선에 집결했다는
그 외 전쟁 발발 2주 전 대부분의 지휘관을 교체하고, 1주 전 대부분의 전방 부대의 위치를 변경하고, 전방 부대의 중화기와 차량 중 60% 가량을 후방으로 보내는 등 개별적으로는 이해가 가나 종합적으로는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위가 집중적으로 일어나 [[
=== 한국 전쟁 전의 여러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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