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테오도르 밀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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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는 많은 원정군 사령관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이었지만, 휘하 장교들과 부하들로부터는 인기가 없었다. 그들은 사령관을 지나치게 소심하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드 네그리에 장군에게 박닌 원정에서 패배한 청나라군에 대한 추격을 중단하도록 한 결정은 타당한 군사적 이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불리하게 받아들여졌다. 부대에서는 세 장군에게 냉소적인 [[베트남어]] 별명을 붙였다. 네그리에는 ''마오렌''(빨리!), 브리에르 드 리즐에겐 ''만만''(천천히!), 밀로에겐 ''또이또이''(멈춰!)라고 불렀다.
 
통킹에서 밀로의 경력은 쓰디쓰게씁쓸하게 끝났다. 건강이 나빠졌고, 프랑스 정부가 [[박러 매복]]을 청나라와의 전쟁의 구실로 이용하려는 것에 실망한 그는 1884년 9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마지막 통지문에서 자신을 ‘병들고, 실망스런 남자’'라고 묘사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