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제프 전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2,043 바이트 추가됨 ,  1개월 전
편집 요약 없음
잔글 (장우제(토론)의 편집을 Twotwo2019의 마지막 판으로 되돌림)
태그: 되돌리기
* 제3차 르제프-시요브카 공세(1943년 3월 2일 ~ 3월 31일) : 칼라닌 전선, 서부 전선과 동시에 브랸스크 전선 남쪽 측면에 대한 공세, 이로써 독일군이 후퇴함
 
== 발단 ==
== 1. 르제프 전투의 경과 ==
 
=== 1. 르제프 전투의 발단 ===
1941년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을 기점으로 시작된 독소 전쟁은 초반, 독일군의 파상공세에 밀려 소련군이 계속 밀려나는 형세였다. 하지만, 소련의 혹독한 추위와 [[라스푸티차]]는 독일군의 진격 속도를 늦추었고, 수도였던 모스크바를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수비에 성공한 소련은 패전을 면할 수 있었고, 이후 독일군이 전열을 가다듬는 6개월 동안 전선은 교착되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모스크바에서의 승리에 고취되어 무리한 추격전을 계획하였고, 철수하고 있는 독일군을 추격해서 섬멸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이에 따라 북에서 남으로 배치된 소련의 [[북서전선군]], [[칼라닌 전선군]], [[서부전선군]], [[브리얀스크 전선군]] 등 200만 명의 병력과 장비가 이번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전력 모두 모스크바 방어전을 치루고 난 직후의 병력들이었다. 대강의 준비를 마친 소련군은 1942년 1월 8일 공세를 시작한다.
<br />
 
== 경과 ==
=== 2. 르제프 돌출부의 형성 ===
== 1.= 르제프 전투의돌출부의 경과형성 ===
당시 소련군이 지칠 대로 지쳐 있던 만큼 독일군도 지쳐 있었다. 또한, 독일군은 피해를 수습하고 있었고, 심지어 부대 재편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련의 칼라닌 전선군은 선공을 시작했고, [[볼가강|볼가 강]]을 건너 [[브야즈마]]를 목표로 남진했다. 그 다음 날에는 서부전선군이 모자이스크로 전진했다. 이 후로 북서전선군과 브리얀스크 전선군도 속속 전진을 시작했다. 독일의 지휘부는 어느 정도의 전선 소강을 예측했고, 소련의 이러한 공세에 놀랐다. 독일군은 소련의 공세에 후퇴했기에 부대 간 방어 구역의 재정립이 정확히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소련의 공격이 연이어 이루어지자 전초가 곳곳이서 뚫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칼라닌 전선군은 독일의 [[중부 집단군|중부집단군]]과 [[북부 집단군|북부집단군]] 사이로 돌파하여 무려 100km를 남진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서부전선군도 1월 20일에 모자이스크를 탈환하고 남진을 계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스크바 방어전의 여파 때문이었을까, [[르제프]]를 향해 진격하던 칼라닌 전선군과 서부전선군은 [[독일 제 9군]]의 격렬한 저항에 공세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 두 전선군이 교착된 상황에서도 다른 전선군은 진격을 계속했기 때문에 르제프 지역만 돌출된 이상한 모습의 전선이 형성되게 된다.
<br />
 
== 2.= 르제프 전투의전선의 결과교착화 ===
소련은 스탈린의 의도대로 독일군을 모스크바에서 멀리 밀어붙이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심각한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고, 모스크바 수비 후 바로 시작된 공세였던 터라 1월 말이 되자 소련군의 공세는 약화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히틀러는 르제프 돌출부를 방어하고 있던 독일 제 9군의 사령관으로 방어전의 귀재인 [[발터 모델]]을 선임했다. 모델은 현지에 부임한 지 얼마 안 있어서 소련군의 진격이 멈춘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독일 군부의 우려와는 다르게 현지 사수가 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는 르제프 사수를 위해 소련군의 예상 접근로에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였고, 진지가 돌파 당하면 후방에 준비되어 있는 강력한 예비대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방어를 진행했다. 소련 또한 혹한에 보급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흘러가게 되면서 진지를 구축하고 대치하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전선은 교착되었고, 교착된 전선은 1943년 5월까지 이어졌다.
 
=== 독일의 반격 ===
모델은 소련 칼리닌 전선군의 예하에 있던 제 39군의 좌측면을 돌파했다. 이로 인해 제 39군은 르제프 서쪽에 포위됐다. 동시에, 서부전선군의 제 33군도 유흐노프 동쪽에서 독일군에 의해 강타 당했다. 결국 33군은 독일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고,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제 33군은 그렇게 사라졌다. 제 33군을 격멸하고 난 모델은 제 39군 또한 섬멸할 계획인 ‘[[자이들리츠 작전]]’을 수립했다. 독일 23군단이 북쪽을 견제하고, 제 [[2전차사단의]] 별동대가 남쪽에서, [[제 56장갑군단]]이 남쪽으로 파고 들어가 소련의 제 39군을 둘로 쪼개서 각개 섬멸하는 작전이었다. 마침내 1942년 7월 2일 독일군은 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은 완전히 성공했고, 결국 소련의 제 39군은 7월 12일 완전히 섬멸됐다.
 
 
== 결과 ==
 
== 3. 르제프 전투의 의의 ==
{{독소 전쟁}}
 

편집

32,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