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의중: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박상섭 (토론 | 기여)
병이 낫지 않아 취임하지 못했다.를 끝내 나아가지 않고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박상섭 (토론 | 기여)
시조를 파조로
17번째 줄:
[[조선 태종|태종]](太宗)이 그를 검교참찬의정부사(檢校參贊議政府事)로 임명하고 여러 차례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고 않고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향년 67세로 졸했으며, 문경(文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ref name=a>『박의중 신도비』</ref> 박의중과 숙부 박인익의 묘지는 옥정 마을에서 약 2km 떨어진 김제시 상동동 삼수동 마을에 있는데 그의 후손들은 이 곳에 재각을 짓고 정재박의중을 밀양박씨 정재파의 파조섬기며파조로 기며 매년 3월 제사를 지내고 있다.
 
== 기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