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필암서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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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장성하서 필암서원'''은[[김인후]]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로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종사된 [[동국 18현]] 가운데 한 사람인 하서 [[김인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사람이다. [[1590년]](선조 23) 그의 문인 변성온(卞成溫)·기효간(奇孝諫)·변이중(邉以中)등 호남 선비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장성읍]] 기산리(岐山里)에 건립하였다.<ref>전라도 관찰사 오음 윤두수가 처음 발의하고, 송강 정철이 배알하였다.</ref>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으나, [[1624년]](인조 2) 호남 사림들의 노력으로 기산리 서쪽 증산동(甑山洞)으로 자리를 옮겨 복설하였다.<ref>호남 사림들은 손자 김남중, 양천회, 양천경, 기효증 등이다.</ref><ref>이건 상량문(上樑文)은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이 지었다.</ref>
 
[[1659년]](효종 10) 3월 [[전라도]] 유생(儒生)들의 소청(疏請)으로 '''필암'''(書院)이라 윤허(允許)를 입었다.<ref>[[1658년]] 사액을 청한 전라도 유생으로는 오희길(吳希吉)의 종질 함평현감 오이익(吳以翼)을 소두( 疏頭)로, 진사 김홍서(金弘緖) 등을 말한다. 함평현감 오이익은 창평현 예문관검열 오희도(吳希道)의 아들이자, 도암 오희길(吳希吉)의 종질이다. 진사 김홍서는 옥과현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 김취수(金就修)의 아들이다.</ref>
 
[[1662년]](현종 3) [[조선 현종|현종]]의 어필로 '''필암서원'''(筆巖書院)이라 선액(宣額)하고, 예조정랑 윤형계(尹衡啓)를 예관(禮官)으로 보내 사제(賜祭)하였다.<ref>사액은 [[1659년]] 3월에 내려졌으나, 실제 선액(宣額. 임금이 서원에 이름을 지어 편액을 하사하는 것)은 [[1662년]] 2월 예조정랑(禮曹正郞) 윤형계(尹衡啓)을 보내어 유제(諭祭)하였다.</ref> 이후 사액(賜額) 서원으로서의 규모와 기능을 갖추게 되었다.<ref>[[1669년]](현종 10) 시호(諡號) 「문정(文靖)」이 내려졌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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