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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수환1.jpg|썸네일|오른쪽|195px|보통학교 재학 시절의 김수환(가운데)]]
 
보통학교 1학년 재학 중 아버지 김영석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서중하는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며 자식들을 엄하게 키웠다. 그러나 김수환은 생전에 회고하기를 "어머니는 자식들 교육에 엄하셨지만 먹는 것, 입는 것은 마치 부잣집처럼 해주셨다. 그 대신 사치란 있을 수 없었고 심지어 엿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도 할 수 없었다."라고 회고하였다.<ref name="mk1">{{뉴스 인용|제목=김 추기경 "더 가난해야 했고 더 사랑해야 했다"|url=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98276|출판사=매일경제|저자=문일호|날짜=2009-02-16|확인날짜=2009-02-20|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1006111216/http://news.mk.co.kr/outside/view.php?year=2009&no=98276|보존날짜=2014-10-06|깨진링크url-status=dead}}</ref>
 
그의 어릴 적 꿈은 상인이 되는 것이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면서 읍내 상점에 취직해서 5년쯤 장사를 배워 독립하고서 25살이 되면 결혼할 생각이었다.<ref name="hankooki1">{{깨진 링크}}{{뉴스 인용|제목="내 어머니처럼 큰 사랑 베풀지 못해 후회"|url=http://news.hankooki.com/lpage/life/200412/h2004121618443123340.htm|출판사=한국일보|저자=김범수|날짜=2004-12-16}}{{깨진 링크|url=http://news.hankooki.com/lpage/life/200412/h2004121618443123340.htm }}</ref> 그러나 상급학교 진학과 [[그리스도]] 신앙의 영향 등으로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보통학교에 다닐 때 그와 넷째 형 [[김동한 (1919년)|김동한]]은 어머니로부터 불려가 나중에 [[사제]]가 되라는 권유를 받고 그 길을 걷게 된다.<ref name="donga4" /><ref>{{뉴스 인용|제목="자기 것 소중하면 남의 것도 소중한 법" <김수환추기경 어록>|url=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9/02/16/200902160626.asp|출판사=해럴드경제|저자=김재현|날짜=2009-02-16}}</ref>한편 어머니는 방랑벽이 있던 그의 맏형을 [[만주]]까지 찾아가 데려왔다고 하며 김수환은 훗날 어머니의 깊은 신앙심과 사랑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ref name="donga4" />
 
[[군위초등학교|군위공립보통학교]]에 다니다가 김수환의 가족들은 [[대구광역시|대구]]로 이사하여 [[성 유스티노 신학교]]로 전학하여 [[1935년]]에 졸업했다. 이후 [[천주교 서울대교구|서울대교구]]의 신학교였던 [[동성고등학교|동성상업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지속하였다. [[1941년]] [[4월]]에 20세의 김수환은 [[천주교 대구대교구|대구교구]]의 장학생으로 [[조치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했으나 점차 독립투쟁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ref name="yonhap1">{{뉴스 인용|제목=<김수환 추기경의 삶과 신앙>(종합)|url=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a%b9%80%ec%88%98%ed%99%98&contents_id=AKR20090216218100005&search=1|출판사=연합뉴스|저자=정천기|날짜=2009-02-16|확인날짜=2009-02-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2210835/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a%b9%80%ec%88%98%ed%99%98&contents_id=AKR20090216218100005&search=1#|보존날짜=2014-02-22|깨진링크url-status=dead}}</ref>[[가톨릭출판사]]에서 간행하는 아동 잡지 [[월간 소년]]에 연재되고 있는 만화 전기《혜화동의 할아버지》에서는 김수환이 신학수업 전통에 따라 본래는 [[로마]]에서 공부해야 하는데, [[일제 강점기]]여서 [[조치 대학교]]에 진학했다고 설명하였다. 일본 유학시절 친일 성향의 일부 학생들과 조선인을 무시하는 일부 교수들과 관리들의 부당한 처우로 방황했지만 [[독일]]인 [[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 [[사제]]의 격려로 학업을 지속하였다고 한다. 나중에 김수환은 [[학도병]]에 강제로 징집되어 동경 남쪽의 '후시마 섬'에서 일본 [[사관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았다.<ref name="yonhap1" /> 김수환은 [[가톨릭대학교|성신대]] 학생 시절 넷째 형 [[김동한 (1919년)|김동한]]이 사목하던 [[부산광역시]] 범일 성당을 방문, 성당 부설 보육원에서 일하며 가끔 사제관 잡일을 돕던 여인으로부터 청혼을 받았다.<ref name="ss1">{{뉴스 인용|제목=김추기경, 서품前 프러포즈 받아 한때 고민|url=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090219004252&subctg1=&subctg2=|출판사=세계일보|저자=조정진|날짜=2009-02-19}}</ref> 그녀가 김수환에게 나를 받아줄 수 있겠느냐며 청혼하자 당시 로마 가톨릭의 사제 서품 전이던 김수환은 "나는 정말 사제가 될 것인가?"를 놓고 일생일대의 고민을 했고 적잖이 마음이 흔들렸다고 한다. 그러나 "한 여인을 온전히 사랑할 자신이 없고, 그보다는 많은 사람을 위해 도움을 주는 일이 좋겠다."라고 마음을 정리하고 결국 청혼을 거절하였다.
==== 광복과 사제 서품 ====
[[파일:학도병 김수환.jpg‎|썸네일|135px|오른쪽|학도병 시절 [[전석재]] 신부와 김수환(오른쪽)]]
==== 1990년대 이후 ====
한편 [[노태우 정부]] 집권 당시 그는 [[국군보안사령부]]의 사찰 대상 중 한 사람이 되어 감시당하다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재학 중 민학투련 출신의 사유로 보안사에 연행 되었다.
[[1990년]] [[10월 4일]] 그것이 군정부의 프락치로 활동해 왔던 [[윤석양]] 이병의 탈영과 폭로로 밝혀졌다.<ref>{{웹 인용|url = http://www.cathrights.or.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1|제목 = 보안사, 저명인사 1300명 사찰 - 탈영사병 양심선언|확인날짜 = 2009-02-17|날짜 = 1990-10-05|출판사 = 천주교인권위원회|보존url = https://web.archive.org/web/20120205163051/http://www.cathrights.or.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1|보존날짜 = 2012-02-05|깨진링크url-status = dead}}</ref>
 
[[1991년]] [[7월]]에는 [[강원도 (남)|강원도]] [[고성군 (남)|고성]]의 [[통일전망대]]를 방문해서 장애인들과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평화의 종을 울렸다.<ref name="kwnews1" />
[[2월 22일]]에는 [[대한민국]] 전국의 성당에서 추도 미사가 열렸다.<ref>{{뉴스 인용|제목=오늘 정오 故 김수환 추기경 추도 미사|url=http://news.kbs.co.kr/article/culture/200902/20090222/1726813.html|출판사=KBS|저자=송형국|날짜=2009-02-22|확인날짜=2009-02-22}}{{깨진 링크|url=http://news.kbs.co.kr/article/culture/200902/20090222/1726813.html }}</ref><ref name="sbs1">{{뉴스 인용|제목=김 추기경 가르침 되새기며…전국에서 추도미사|url=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0548794|출판사=SBS|저자=주시평|날짜=2009-02-22|확인날짜=2009-02-28}}</ref> 서울대교구는 [[2009년]] [[4월 5일]]([[주님 수난 성지 주일]])까지 사순절 기간을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추모 기간으로 선포했다.
=== 선종 이후 ===
한편, 김수환 추기경은 [[1990년]] [[1월 5일]]에 장기 기증에 서약하였고,<ref>{{뉴스 인용|제목="장기기증 서약 장면 눈에 선합니다"|url=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sid2=245&mid=hot&gid=249782&sid1=103&nh=20090220071554&cid=249765&iid=72807&oid=001&aid=0002512153|출판사=연합뉴스|저자=박성민|날짜=2009-02-19}}</ref> 선종 후에는 자신의 [[각막]]을 두 사람에게 기증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고 김 추기경의 각막…안동 70대 이식|url=http://news.naver.com/hotissue/ranking_read.php?section_id=103&ranking_type=popular_day&office_id=003&article_id=0002534340&date=20090219&seq=7|출판사=뉴시스|저자=피재윤|날짜=2009-02-19}}</ref> 김수환 추기경이 각막을 기증했다는 사실이 보도되고 나서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에는 평소보다 10배나 많은 사람이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고,<ref>{{뉴스 인용|제목=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후 장기기증 등록 10배 늘어|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534966|출판사=뉴시스|저자=류난영|날짜=2009-02-19}}</ref> 여타 공공기관 등에서의 장기기증 약속,<ref>{{뉴스 인용|제목=全 장관 등 복지부 1, 795명 장기기증 서약|url=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0902/e2009022717324693780.htm|출판사=서울경제|저자=김광수|날짜=2009-02-27|확인날짜=2009-02-28|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60304195927/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0902/e2009022717324693780.htm#|보존날짜=2016-03-04|깨진링크url-status=dead}}</ref> 그리고 연예인들의 장기 기증 의사 또한 이어졌다. 특히 가수 [[장윤정]], [[서인영]], [[박현빈]], [[쥬얼리 S]], 배우 [[정한용]], 희극인 [[양원경]] 등이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장기기증 운동본부 관계자는 “김 추기경 선종 이후 장기기증 문의가 쇄도했고 실제로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 수도 많이 늘었다며, “특히 선종 이후 5일까진 기증 희망자가 너무 많아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들도 각막 기증 릴레이|url=http://www.fnnews.com/view?ra=Sent0701m_View&corp=fnnews&arcid=090219222224&cDateYear=2009&cDateMonth=02&cDateDay=20|출판사=파이낸셜뉴스|저자=정명진|날짜=2009-02-19}}</ref>
또한, 그의 평소 가르침에 따라 자원 봉사와 입양 등의 봉사도 이어졌다.<ref>{{뉴스 인용|제목=멈추지 않는 ‘명·동·기·적’|url=http://pdf.joins.com/index.asp?form_type=article_f&id=DY01200902210053&keyword=%B8%ED%B5%BF%BC%BA%B4%E7%20%C7%E0%B7%C4&s_startyear=2009&s_startmonth=02&s_startday=21&s_endyear=&s_endmonth=&s_endday=&pagenum=1&s_year=2009&s_month=02&s_day=21&re_keyword=&re_search=&re_keyword2=&re_search2=&s_field=&list_type=2&sv=text|출판사=중앙일보|저자=임미진, 장주영, 이진주, 김경빈|날짜=2009-02-21|확인날짜=2009-02-21}}</ref>
* 서점가에는 그와 관련된 책이 잇따라 출간되었으며, [[수원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구중서]] 교수가 김 추기경 평전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를 집필하였다. 김수환의 말과 글을 시구처럼 편집한 엮은 잠언집 《바보가 바보들에게》도 발간되었다. 현재 천주교 서울 대교구는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인사말을 사회운동으로 펼치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그가 선종한 후 [[2009년]] [[3월 9일]]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지름 9cm 크기의 원형 스티커를 50만 장 찍어 일반에 배포되었다.
* 이 스티커는 빨간색을 바탕으로 그가 그린 자화상 《바보야》를 중앙에 새겨, 많은 사람이 차량 유리창이나 사무실 출입문 등에 이 스티커를 붙여 김 추기경의 넋을 기렸다.<ref>{{뉴스 인용|제목=스타들도 각막 기증 릴레이|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8&aid=0002120341|출판사=머니투데이|저자=정진우|날짜=2009-03-21}}</ref>
*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으며, 하루 평균 800명의 추모객이 다녀간다.<ref>{{뉴스 인용|제목=<nowiki>[week&커버스토리] 추모여행,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소풍’</nowiki>|url=http://life.joins.com/travel/news/article.asp?total_id=3634126|출판사=[[중앙일보사]]|저자=권혁재 기자|날짜=2009-06-04|확인날짜=2009-06-17|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50715104330/http://life.joins.com/travel/news/article.asp?total_id=3634126|보존날짜=2015-07-15|깨진링크url-status=dead}}</ref>
 
[[2010년]] 2월에는 그가 그린 자화상의 이름을 본뜬 모금 및 배분 전문 공익법인 《바보의 나눔》이 창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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