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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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알폰소 리구오리는 [[나폴리 왕국]]의 수도 [[나폴리]] 인근에 있는 마리아넬라에서 태어났다. 나폴리 귀족의 7형제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6세에 법률학교에 입학하여 아주 유명한 법률가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그는 법률가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나의 친구여, 우리의 직업은 불화와 위험으로 가득하네. 그 때문에 우리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고, 죽음마저 불행하게 맞이할 위험을 안고 있어.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일을 그만둘 거야. 나한테는 맞지 않거든. 왜냐하면 나는 내 영혼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소망하기 때문일세.”<ref>[http://www.archive.org/details/thelifeofstalpho00tannuoft Tannoja, Antonio. "The life of St. Alphonsus Maria de Liguori" (1855) p. 30]</ref> 특히 27세에 중요한 재판에서 패소한 다음부터 그는 법률계를 떠나기로 결심하였다.<ref>{{웹 인용 |url=https://www.tanbooks.com/index.php/page/shop:flypage/product_id/275/keywords/alphonsus+liguori/ |제목=보관 된 사본 |확인날짜=2012년 4월 27일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512222133/https://www.tanbooks.com/index.php/page/shop:flypage/product_id/275/keywords/alphonsus+liguori/# |보존날짜=2014-05-12 |깨진링크url-status=dead }}</ref>
 
부친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폰소 리구오리는 1723년 법률가를 그만두고 [[성 필립보 네리]]가 세운 오라토리오회에 입회하여 성직자가 되기 위하여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1726년 12월 21일 그는 30세의 나이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그는 처음 1년간은 집도 없이 떠돌며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있던 청소년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그는 청소년들이 직접 운영하는 기도 모임을 만들었다. 기도 모임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기도와 강론, 사회활동, 교육 등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알폰소 리구오리가 사망한 당시에는 이러한 모임이 72개나 되었으며,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었다. 알폰소 리구오리의 강론은 신앙을 멀리 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