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현 (1969년 7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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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현대 유니콘스|태평양 돌핀스]]에서 데뷔한 뒤 [[1989년]]에 19승(15선발승으로 이강철과 함께 그 해 최다 선발승이자 잠수함 선발 최다승 기록을 세웠지만 92년 이강철(17선발승)에 의해 깨짐)을 올리며 신인왕에 올랐다.<ref>[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85166 야구의 추억, 스물아홉 번째 - 인천 마운드의 전설, '돌풍 잠수함' 박정현] 《오마이뉴스》, 2007년 1월 11일 작성</ref> 이때의 19승은 신인 자격을 갖춘 입단 둘째 해에 거둔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 신인 최다승 기록이 입단 첫 해의 신인에게만 적용되었기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되지 않았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609261047572220 '류현진, 역대 최연소 '200이닝-200K' 달성 임박']</ref>
 
[[1989년]] [[5월 16일]] [[잠실야구장|잠실]] [[MBC 청룡|MBC]]전에서 최연소 완봉승을 기록했다. 그 후로도 [[정명원]], [[최창호 (야구인)|최창호]]와 같이 [[현대 유니콘스|태평양]] 투수진의 '''마운드 삼총사'''로 불리며 4년 연속 10승대 투수로 활약하였지만, [[1992년]] 이후에는 잦은 부상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재활과 부상을 반복하였다. 혹자들은 이러한 빈번한 부상이 김성근 감독의 과도한 투구 지시의 폐해라고 보기도 한다. [[1996년]] 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뀌었지만 돋보이는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1998년]] 7월,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의 투수 [[조규제]]와의 트레이드로 팀 동료인 [[가내영]]과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했다. 쌍방울의 마지막 해였던 [[1999년]]에는 124이닝을 소화했고 모처럼 3점대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여 당시 재정난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었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감초]]같은 역할을 했다.했으나 10폭투로<ref>{{뉴스 인용
| 제목 = 개인성적
| url = https://www.koreabaseball.com/Reference/Ebook/EbookView.aspx?Gyear=2015&FileNM=2015_deagam
| 출판사 = 한국야구위원회
| 저자 =
| 쪽 = 411
| 날짜 = 2015-04-01
| 확인날짜 = 2019-12-09
}}</ref> 역대 잠수함 투수 최다 폭투 기록의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2000년]]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단을 승계하여 새롭게 연고 팀이 된 [[SK 와이번스]]에서 활약하였으나, [[2000년]] 시즌을 끝으로 방출되어 은퇴하였다. 은퇴 후 [[상무 피닉스 (야구)|상무 피닉스]] 코치를 거쳐<ref>{{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