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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정보
| 이름 = 퇴경 권상로<br/>退耕 權相老
| 출생일 = {{출생일|1879|2|28}}
| 사망일 = {{사망일과 나이|1965|4|19|1879|2|28}}
| 출생지 = 조선 경상도 문경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 직업 = 불교 승려, 前 정치가
| 정당 = [[무소속]]
| 경력 =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 <br/>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관<br/>동국대학교 총장
}}
 
'''권상로'''(權相老, [[1879년]] [[2월 28일]] ~ [[1965년]] [[4월 19일]])는 [[일제 강점기]]의 [[승려]]이다. [[창씨개명]] 후에는 '''안도 쇼로'''({{llang|ja|安東 相老}})로 불렸다. [[법명]]은 '''퇴경'''(退耕), [[호 (이름)|아호]]는 퇴경당(退耕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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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후에 조선불교와 승려들의 처우가 좋아지며 도성 출입 금지 정책을 해제하는 등 상대적으로 불교에 우호적인 정책이 나오게 되었다. 불교계에서는 일본과 [[조선총독부]]의 정책을 찬양하는 친일 문건을 다수 작성했고, 권상로는 자신이 편집자를 맡은 《[[조선불교월보]]》와 《불교》에 친일 논설들을 수록하여 [[한일 병합 조약]] 체결 무렵부터 친일적인 성향을 보였다.
 
이후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태평양 전쟁]] 시기에 시국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한 노골적인 친일 행각으로 전쟁에 적극 협력했다. 예를 들어 그는 《[[불교시보]]》에 실린 〈승려 지원병에 대하야〉(1940)에서는 [[임진왜란]] 때의 승병 등을 예로 들면서 청년 승려들이 전쟁이 지원병으로 참전해야 한다며 역설했고, 전쟁 승리가 곧 성불이라는 친일 논리의 집대성격인 단행본 《임전의 조선불교》(1943)를 간행했다. [[1940년]]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참사를참사관을 맡기도 했다.
 
광복 후에도 불교계의 원로로 활동하면서 [[1953년]] [[동국대학교]] 초대 총장을 맡았고 [[1962년]]에는 [[문화훈장]]을 수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