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비파형 청동기연대가 BC2333년까지 올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 사서에서 나오는 BC2333년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일본이 우리나라 역사를 편집할 때 '실증사학'을 통했는데 이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역사적 기록보다 실제 유물. 즉 고고학적 유물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서에 적혀있는 내용이지만 현재 존재하지 않다면 그 기록의 역사는 '허구'가 되는 것이다. 실증사관 그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유독 한국의 학자들은 이 실증사학에 매료되어 실제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 전 기록들은 믿을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주석을 달며 다양한 의견을 내세우기에 그 한가지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선 여러사람들의 의견들을 종합하여 역사를 파악해야 하지만 한국의 학자들은 여러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이유로 그 역사 실체를 잘못되었다고 규정해버리고는 한다.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멸망 연도도 이러한 관점에서 정리되어 필자가 바꾼다. |
175.194.238.46(토론)의 25380487판 편집을 되돌림 |
||
37번째 줄:
{{한국사}}
'''고조선'''(古朝鮮, {{llang|en|Gojoseon}},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이 [[청동기]] 문명을 기반으로 한 [[만주]] 및 [[한반도]]에 있던 [[고대 국가]]라고 파악하고 있다.<ref>한영우 외, 한국사특강위원회,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년]], {{ISBN|89-7096-115-1}}, 40쪽 - [[농업]] 경제와 [[청동기]]문화를 영위한 이래로 [[한반도]]와 중·남부 [[만주]] 지역 각지에서 새로운 정치적인 움직임이 서서히 태동하는 가운데서 가장 먼저 역사의 무대에 두각을 나타낸 것이 조선이다.</ref><ref>김기흥, 《한국고대사》, 역사비평사, 1993년, {{ISBN|8976960025}}, 235쪽</ref><ref>한국박물관연구회, 《한국의 박물관 2 - 경보화석박물관.양구선사박물관》 , 문예마당, 1999년, {{ISBN|8982990755}}, 58-59쪽 - 고조선은 물론 청동기 국가였음이 분명하지만 그리고 [[비파형 동검]]을 사용했지만, 전남지역에서 [[비파형 동검]]이 발견되었다고 그 곳까지 고조선의 강역으로 볼 수는 없다……</ref><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