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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형 청동기연대가 BC2333년까지 올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러 사서에서 나오는 BC2333년 고조선의 건국연대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일본이 우리나라 역사를 편집할 때 '실증사학'을 통했는데 이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역사적 기록보다 실제 유물. 즉 고고학적 유물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사서에 적혀있는 내용이지만 현재 존재하지 않다면 그 기록의 역사는 '허구'가 되는 것이다. 실증사관 그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유독 한국의 학자들은 이 실증사학에 매료되어 실제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으면 그 전 기록들은 믿을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주석을 달며 다양한 의견을 내세우기에 그 한가지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선 여러사람들의 의견들을 종합하여 역사를 파악해야 하지만 한국의 학자들은 여러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이유로 그 역사 실체를 잘못되었다고 규정해버리고는 한다. 고조선의 건국연대와 멸망 연도도 이러한 관점에서 정리되어 필자가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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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고조선'''(古朝鮮, {{llang|en|Gojoseon}}, BC2333? ~ [[기원전 108년|???]])은 [[한국의 역사]]상 최초의 고대 국가이다.<ref>고조선 [古朝鮮]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본래 국호는 '''조선'''(朝鮮)이나, 일반적으로 [[14세기]] 말 [[조선 태조|이성계]]가 건국한 같은 이름의 왕조([[조선]])와의 구분을 위해 '고조선'이라 부른다. 그러나 사실 [[위만]]이 건국한 [[위만조선]]과의 구분을 위해 사용된 용어이다. [[고려]] 시대 [[일연]]이라는 승려가 [[삼국유사]]를 지으면서 [[고조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헌상의 기록에 따라 실존했던 국가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관련 기록이 적고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직접적으로 고조선의 것이라 암시되는 유물·유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조선의 연대와 강역·역사·문화 등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3224&cid=1590&categoryId=1590 「고조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f>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는 일반적으로 고조선이 [[청동기]] 문명을 기반으로 한 [[만주]] 및 [[한반도]]에 있던 [[고대 국가]]라고 파악하고 있다.<ref>한영우 외, 한국사특강위원회,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년]], {{ISBN|89-7096-115-1}}, 40쪽 - [[농업]] 경제와 [[청동기]]문화를 영위한 이래로 [[한반도]]와 중·남부 [[만주]] 지역 각지에서 새로운 정치적인 움직임이 서서히 태동하는 가운데서 가장 먼저 역사의 무대에 두각을 나타낸 것이 조선이다.</ref><ref>김기흥, 《한국고대사》, 역사비평사, 1993년, {{ISBN|8976960025}}, 235쪽</ref><ref>한국박물관연구회, 《한국의 박물관 2 - 경보화석박물관.양구선사박물관》 , 문예마당, 1999년, {{ISBN|8982990755}}, 58-59쪽 - 고조선은 물론 청동기 국가였음이 분명하지만 그리고 [[비파형 동검]]을 사용했지만, 전남지역에서 [[비파형 동검]]이 발견되었다고 그 곳까지 고조선의 강역으로 볼 수는 없다……</ref><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