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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최초의 박사는 송복신(1929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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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에 재학하면서도 재미 한인교민사회의 활동에도 참여하는 한편 [[이승만]], [[안창호]], [[서재필]] 등의 재미 한인 지도자들을 방문하기도 했다. [[1928년]] [[5월]] 미국 캔자스에서 개최된 미국 기독교 감리회 대회에 조선인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석하였다. [[1928년]] [[미국]] 유학중 "무지와 구습의 타파"를 이유로 공개 단발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1929년]] [[11월]] [[일본]] [[교토]](京都)에서 열린 제3차 태평양문제연구회의에 조선 대표로 [[윤치호]], [[송진우 (정치인)|송진우]], [[유억겸]], [[백관수]]와 함께 참석했다.
 
[[1930년]] [[실론 섬]]에서 개최된 여자기독교 청년회 동남아시아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1930년]] 여름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으로 돌아가서 복학, 1년 3개월 동안 박사 논문을 준비하였다.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는 <한국의 부흥을 위한 농촌교육 Rural Education for the Regeneration of Korea>으로, 한국의 농촌 교육에 대한 것이었다. [[1931년]] [[10월]]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활란은 한국 여성 최초의 박사(1931년)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사실 한국 여성 최초의 박사는 1929년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대학교]]에서 [[공중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은 송복신이다.
 
==== 교육, 농촌 계몽 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