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미니우스주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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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사람이 성령에 의한 중생이나 선행하는 은혜 없이는 구원 얻는 믿음이나 참으로 선한 어떤 것도 행할 수 없다고 여전히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작정이 조건적이라고, 즉 하나님의 예정은 신자가 가질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예지에 의존한다고 가르쳤고, 그리스도의 속죄는 각 사람의 구원을 실제로 이룬 것이 아니라 가능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신자의 삶에 매순간 은혜가 필수적이지만, 은혜는 불가항력적이지 않다고 믿었다. 그들은 또한, 은혜로 말미암아 시험을 능히 계속 이기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으나, 이 확신을 성도의 "필연적인 견인"으로까지 표현하는 것은 거부했다. 불가항력성아 칼빈주의의 구별된 특징이라면, 아르미니으스주의자들의 구별된 특징은 조건주의였다.<ref>{{서적 인용|url=https://www.worldcat.org/oclc/975593323|제목=의지의 자유|성=에드워즈|이름=조나단|날짜=2016|판=|출판사=부흥과개혁사|쪽=24|장=|isbn=89-88614-47-X}}</ref>
 
비록 17세기 초반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 하나님 쪽을 크게 강조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에 저항할 수 있다는 그들의 가르침은 이후의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 가운데 도덕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에 대한 강조가 더욱 심화되는 길을 열어 놓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보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강조하는 [[펠라기우스주의]]로 쉽게 변했고, 도덕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 완전히 우위를 차지하는 [[이신론]]이나 [[자연종교]]로 쉽게 변했다. 이렇게 해서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칼빈주의]]의 냉엄한 [[교리]]들에 상처받은 도덕적 본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불평을 지칭하는 그저 느슨한 용어가 되었다.
 
==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