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타 국제공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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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본 정부는 공항 예정지의 40%를 차지하는 국유지인 고료 목장에 기대어 현지 주민들을 무시하고 공항 건설에 관한 사전 설명이나 대체지 마련 등의 준비 없이 속도전으로 용지 매수를 밀어붙여 농민을 중심으로 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불렀다. 정부가 각의 결정을 근거로 주민들과 일체의 교섭 시도조차 하지 않자 지역 농민들은 [[7월 20일]]에 '산리즈카-시바야마 연합 공항반대 동맹'을 결성하고 반대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듬해인 1967년부터는 [[신좌파]]가 개입하였다. 이로 인해 용지 매수가 정체되자 일본 정부는 토지수용법을 근거로 [[1971년]]에 2차례에 걸친 [[행정대집행]]을 통해 1단계 사업 용지를 확보하였고, 급기야는 사태가 실력 행사를 넘어 경비 경찰과 임시 파출소를 습격하는 게릴라 사건으로 악화되었다. 개항 예정 4일 전인 1978년 3월 26일에는 공항 내에 반대파 게릴라들이 난입해 관제탑을 점거하고 관제 장비를 파괴하기에 이르러 개항이 50여 일 연기되었다.<ref>[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80708161919&Section= 나리타공항이 언제나 '계엄'인 까닭] 프레시안, 2008.7.9.</ref>
 
나리타 국제공항은 [[1978년]] [[5월 20일]]에 '''신도쿄 국제공항'''({{llang|ja|新東京国際空港|신토쿄코쿠사이쿠코}})으로 개항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예정되었던 활주로와 시설의 확장은 지역 주민들의 저항과 [[알박기]]로 인해 대폭 축소 또는 연기되었다. 나리타 국제공항국제공항의 건설 과정에서 빚어진 엄청난 갈등과 사회적 비용의 영향으로 이후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에서는 신공항을 건설할 때 해상 매립을 통해 부지를 확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2009년]]에는 [[일본 국토교통성]] 내에서 더 이상의 시설 확장이 어려운 나리타 국제공항 대신 [[하네다 (오타 구)|하네다오타구]]의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국제공항]]을 확장하여 다시 국제선 [[허브 공항]]으로 삼자는 제안이 나와, [[지바현]] 지사가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나리타행 노선은 [[도쿄 국제공항|하네다 국제공항]] 노선과 달리 [[대한민국]] - [[일본]] 양국 간 오픈스카이가 체결되어 있어서 운수권이 별도로 없다.
 
== 공항 시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