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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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지 마라. 그 자료들이 신뢰성이 있냐. 가장 신뢰할 만한 일본군 함선 손실은 31척이고, 사상자는 미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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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자1 = 순천감목관 [[김규동]], 우수영노비 계생 [[작전 중 사망|전사]] (전사자 총 2명) <br/>박영남, 봉학, 이극신등 3명 부상,기타 상세 불명<ref>{{서적 인용|저자 =이순신|제목 =난중일기 |연도 = 1597 }}</ref>
임치 첨사가 탄 배의 격군이 부족했다 하였으므로 조선수군의 피해규모가 컸을것으로 추정됨<ref>난중일기-이순신,1597년10월27일/(음력)9월17일</ref>
|사상자2 = 전선 31척 침몰, 사상자 불명
|사상자2 = 전선 100여척이상 완파, 이외 전선 다수 파괴<ref>나머지 90여 척 모두 다 반파됐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으나, 전문가 중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난중일기, 조선왕조실록, 장계 등에도 그에 관하여까지 서술하고 있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 예컨대,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정유일기2의 9월 16일자를 보면 마지막 부분에 "적선 서른한 척을 쳐부수자"라고 돼있을뿐, 나머지 전선에 대해서는 정확히 얼마나 많은 수가 완파 혹은 반파됐는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난중일기는 명량해전의 반쪽짜리 기록이므로 100여척이상이 완파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해남명량대첩비,선묘중흥지에서 확인</ref>,<br/>[[도도 다카토라]] 부상<br />[[구루시마 미치후사]] 전사 <br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 전사 <br /> 최소 8000여 명 전사 추정<ref>반파된 왜선이 불분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극 '불멸의이순신'을 비롯하여 불특정 일각에서 일본군 전사자 수를 18466명이라 하는데, 전문가 중 전사자 수로 18466명을 드는 사람도 없으나 [[난중잡록]], [[명량대첩비]], [[선묘중흥지]]를 통해서 많은 왜선이 화공으로 소멸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최소 8000여명의 일본군이 피해를 본것으로 파악된다. 해남[[명량대첩비]]와 [[선묘중흥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ref>
}}{{전역상자 정유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