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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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잡록]]》에는 내도수(來島守 )로 기록되어 있으나 본명은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通總)로, 일본의 [[해적]] 가문 출신이다. [[당포 해전]]에서 [[이순신]]의 함대와 맞서 싸우다 전사한 [[구루시마 미치유키]](來島通之)의 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마다시(馬多時)는 칸 히라우이몬 미치나가(菅平右衛門達長)의 서자인 칸 마타시로 마사케가(菅野又四郎正陰)로 알려져 있다.
언뜻보기에는 [[난중일기]]와 [[난중잡록]]은 둘다 명량해전을 기록한 것이지만 서로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여 기록한 문헌이다. 난중일기는 통제사 이순신이 이끄는 공격부대측의 해상전투 기록이며 좁은 목(項)에서 발생한 기록은 빠져있다. 그러나 난중잡록은 해상기록은 매우 간략하지만 해안가 기록은 비교적 상세하다. 그러므로 두 문헌은 다른 기록선상에 있기에 "마다시"와 "내도수"는 서로 다른 인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문헌이 있는데 "선묘중흥지(宣廟中興誌)"<ref>내도수가 군사들을 죄다 이끌고 전진하니 배가 꼬리를 물고 바다를 덮어 그 끝을 알 수 없었는데, 이순신의 거느린배는 고작 십여척뿐이었다. 이순신은 피난민의 여러 배들을 먼 곳에 벌려 군함인 것처럼 만들어 놓고 바다 한가운데 닻을 내리고 대항하였다. 적은 먼저 백 여척의 배로써 포위했는데 형세가 마치 풍우 몰아치는 듯하므로 장수들이 겁내어 안색이 변해지며 이순신으로도 죽음을 면할 수 없이 되었다 하고 일제히 물러갔다.
이순신이 친히 뱃머리에서 소리를 높여 독려하니 첨사 김응함과 거제 현령 안위 등이 배를 돌려 들어서서 적을 대항하자 적이 개미떼처럼 붙어 안위의 배가 거의 침몰하게 되므로 이순신이 배를 돌려 그것을 구원하고 그 자리에서 적선 두 척을 쳐부수고 잠시 동안에 삼십 척을 연달아 깨뜨리며 그 선봉장의 목을 베니 적이 크게 놀라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