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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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1956년]] [[4월 23일]] ~ [[1961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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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2" | 4 || rowspan="2" | [[1961년]] [[9월 11일]] ~ [[1970년]] [[11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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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4" | 중앙위원회 총비서 || 총비서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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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 [[1970년]] [[11월 2일]] ~ [[1980년]] [[10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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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3" |6 || rowspan="3" |[[1980년]] [[10월 10일]] ~ [[2016년]] [[5월 5일]] || 김정일 후계자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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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br>(1994~2011) ||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 추대<br>김정은 후계자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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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span="2" | [[김정은]]<br>(2012~) || 중앙위원회 제1비서 ||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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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 당 위원장 || [[2016년]] [[5월 6일]] ~ || 위원장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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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기 당중앙위원회는 1946년 8월 개최된 [[북조선로동당 제1차 대회]]에서 선출되었다. 첫 중앙위원회는 43명으로 구성되었고, 점차 증가하여 제7기 중앙위원은 235명으로 늘어났다. 투표권이 없는 후보위원은 [[북조선로동당 제2차 대회]]부터 선출되었다.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1948년부터 1961년까지 연평균 2.4회가 개최되어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개최 비율과 거의 비슷했다. 이 기간 동안에 열린 회의는 대부분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ref>Lankov, Andrei (2007). Crisis in North Korea: The Failure of De-Stalinization, 1956. University of Hawaii Press. ISBN 0824832078.</ref>
 
그러나 [[김일성]] 사후 [[김정일]] 시기에는 당이 유명무실화되면서 17년동안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김정은 후계자 추대를 위한 단 한 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김일성 시기인 1993년 12월에 6기 21차 전원회의가 열렸으나 22차 회의는 2010년 9월에나 열렸고, 23차 회의는 김정일이 죽은 뒤 2013년 3월에나 개최되었다. 이처럼 김정일 집권기 내내 회의가 열리지 않으면서 6기 중앙위원회는 1980년에 선출되고도 36년이 지난 2016년에서야 임기가 만료되었으며, 2010년까지는 보선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