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오퀘 문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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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내용이 지나치게 동방교회의 입장으로 서술되어 모든 책임과 잘못이 서방교회에 있는 것과 같이 서술. 심지어 가톨릭교회에서 서방 가톨릭교회가 분열되었다는 어느 교회사가도 하지 않은 이해하기 힘든 주장 또한 실려 있었음 초대 교회로부터 시작된 가톨릭 교회는 거룩한 교리와 전통, 성사와 사도전승을 보유하고 있는 한 가톨릭 교회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것. 그 이름이 로마 가톨릭이던 동방 정교던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나뉘어진것임. 에큐메니컬적 관점에서 동-서 교회 분열은 로마교회의 교황과 동방교회의 총대주교가 후에 상호파문을 철회하고 만나서 형재애를 확인하고 화해한 대로 상호간의 오해와 당시의 정치적, 권력적 파워게임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신학적으로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있는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님. 또한 각 진영에서 주장하는 것도 나름 설득력이 있는 바 최대한 중립적이고 양측 입장을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도움이 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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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오케 문제''' 또는 '''필리오케 논쟁'''은 [[기독교]]의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수록된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 논쟁으로, 시작은 [[서방교회]]의 모체인번역문제에서 [[로마교회]]시작되었다. 총대주교즉 성령의 정의에 대해 '성부와 성자에게서(Filioque) 발하시고' 라고 번역한 라틴 문구가 문제의 핵심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된 의역은 아리우스파를 견제하기 위한 일이었고<!-- 아리우스파의 경우 피조물 중 으뜸이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반신적 존재라 여겼을 뿐 완전한 신으로 보지 않았다. 때문에 하느님의 영인 성령이 성부 뿐만 아니라 성자로부터 같이 발하신다는 문구로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 초기에는 별 신학 논쟁으로 번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이 필리오케 신경이 퍼져나가자 교황 [[레오 3세]] 809년그렇지 번역않아도 오류를동서의 인정하고권력다툼으로 필리오케번져가던 용어를교회의 라틴어대립을 신경에서억제하는 삭제하고것이 [[로마교회]]도옳다고 여겼고 [[헬라어]] 원문을 따르기로따르는 결정하여방향으로 일단락된결정하였다. 교리그러나 논쟁이었다.9세기 하지만들어 11세기니콜라오 [[콘스탄티노폴리스]]를1세가 중심으로보편교회에 하던대한 [[공교회]](보편교회)에서영향력을 로마교회가증대시키기 이탈위해 또는불가리아에 완전한필리오케 자치권을신경을 얻기도입하면서 위해동/서방 재주장한교회의 교리이다관계가 악화일로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포티오스는 867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회의를 열어 니콜라오 1세를 파문하였다. --> 이로 인해 [[기독교]] [[신학]]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11세기]] 이후 [[로마교회]]가상호 [[공교회]]에서파문으로 이탈하는인해 동서 교회가 분열되는, [[교회 분열]]의 빌미가 되었다. 그후 13세기와 15세기에 동서방교회의 재결합을 논하는 공의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으나 끝내 일치를 이루진 못하였다. 1874년과 본과 1912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로마교회]]와 [[정교회]], [[성공회]] 간에 이 문제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합의를 이루진 못하였다.
 
==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