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 정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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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양생]](鄭良生): 11세손. 단성보리 찬화공신(端誠輔理贊化功臣)에 책록되고 봉원부원군(蓬原府院君)에 봉(封)해졌다.
* [[정구 (1350년)|정구]](鄭矩, 1350년 ~ 1418년): 정양생의 아들. 1377년(우왕 3) 문과에 급제해 전교부령(典校副令)을 지냈고,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한성부우윤을 지냈으며, 정종 때 도승지·대사헌, 태종 때 예문관학사를 거쳐 중군총제(中軍摠制)·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공조판서·호조 판서·판한성부사·계림부윤·개성부유후 등을 역임하였다.
* [[정광필]](鄭光弼, 1462년 ~ 1538년): 조선 중기의 문신. [[영의정]]을 지냈으며, [[기묘사화]]때 [[조광조]]를 구하려 애쓴 인물로 유명하다. 시호는 문익(文翼)이고 현 동래정씨의 문익공파가 여기에서 파생되었다.
 
자는 사훈(士勛), 호는 수부(守夫). 정구령(鄭龜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진주목사 정사(鄭賜)이고, 아버지는 [[이조판서]] [[정난종(鄭蘭宗)]]이며, 어머니는 [[장사랑]] [[이지지(李知止)]]의 딸이다.
 
저서로는 『정문익공유고(鄭文翼公遺稿)』가 있다. 중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회덕서원, 용궁의 완담향사(浣潭鄕祠)에 향사되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고 현 동래정씨의 문익공파가 여기에서 파생되었다.
* [[정태화]](鄭太和): 20세손. 1628(인조 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벼슬살이를 시작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1673(현종 14)년 심한 중풍 증세로 사직이 허락되기까지 20여 년 동안 5차례나 영의정을 지내면서 효종과 현종을 보필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지 6개월 후 나이 72세로 죽으니, 현종은 3년 동안 늠록(廩祿)과 제수를 내리도록 특명하였고, 그 뒤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시문을 모아 엮은 "양파유고(陽坡遺稿)"와, 1656(효종7)년까지의 일기인 "양파연기"가 있으며, 시조 1수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