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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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河秀는 장흥(長興) 사람이요. 벼슬은 繕工主簿였다. 정유년에 배 한 척을 만들어 해상에서 피란하다가 李統制가 복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우리들이 무엇을 걱정하랴”하고 會寧浦로 가서 문안을 드리니 李 공이 말하되 “칼날을 무릅쓰고 찾아오니 무척 수고했구려, 그대의 고을에서 온 피난선이 몇 척인고”하니 공은 “10척가량 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李 공이“그대는 배들을 모아 나의 후원이 되어 군대의 위용을 도와준다면 큰 보조가 될 것이다” 하므로, 그는 “ 제가 비록 늙었으나 공과 함께 죽고 삶을 같이 하겠습니다.”했더니 이에 李 공이 극구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공이 물러 나와 시 한수를 지었는데
 
*문화와 예절 바르고바른 성스러운 선조의 나라/ 어쩌다 추악한 오랑캐가 쳐들어오나/ 사나이 늙었어도 장한 이 마음/ 이야말로 전쟁에서 죽을 때로다.
 
그때 백진남(白振南), 김성원(金聲遠), 문영개(文英凱), 변홍원(卞弘源), 백선명(白善鳴), 김택남(金澤南), 임영개(任永凱) 등 10여인이 피난선을 가지고 와 모였는데 정명설(丁鳴說)도 역시 그 가운데에 끼어 있다가 공을 찾아와 “우리들이 본래부터 길러온 충성심인데 오늘날을 당하여 늦춰서는 안 됩니다.” 듣자오니 이통상(李統相)이 방금 피난선으로 하여금 먼바다에 열 지어 군대같이 가장하라 하시니 “이 기회를 타서 같이 나간다면 파죽(破竹)의 승세(勝勢)가 오직 이 한 번에 있을 것이요”라고 하자 공도 ”내 마음도 벌써 정했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