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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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내에서 이문욱과 손문욱이 등장하는 시기에 대하여 살펴보면, 시간순으로 먼저 이문욱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고 후에 손문욱으로 개명되어 등장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문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기사는 선조실록 87권에 1건, 89권에 2건, 104권에 1건, 106권에 1건이다. 반면 106권 선조 31년 11월 2일조 이덕형의 치계(馳啓) 이후부터는 손문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106권 내에서 이문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기사는 선조 31년 11월 27일조 사신(史臣)의 논(論) 부분인 바, ‘사신(史臣)의 논(論)’이라는 것이 전투 현장에서가 아니라 조정에서 추가되었다는 점, 또한 사건 당일이 아닌 후일 추가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 전투 현장에서 ‘이문욱’이 ‘손문욱’이라는 이름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최초의 문서는 이덕형의 치계이며, 이덕형이 치계를 작성한 시기인 선조 31년 11월 2일보다 조금 앞선 시기부터 ‘손문욱’이라는 이름이 현장에서 통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전투 현장에서 이문욱에서 손문욱으로 바뀌어 통용되기 시작한 이유는 불명하나, 아마도 손문욱이 일본군 진영을 나와 조선군에 투항하면서 성(姓)이 바뀐 것으로 보인다. 선조실록 104권 선조 31년 9월 23일조에 기재된 전라도방어사 원신의 치계에 ‘남해에 주둔한, 왜적에 귀부한 유학 이문욱(南海附賊人幼學李文彧)이 적의 진중에서 나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원신의 치계 바로 다음에 오는 전투현장에서의 보고는 선조실록 106권 선조 31년 11월 2일조 이덕형 치계인데, 여기서 이덕형은 “손문욱과 남해에서 나온 사람들(孫文彧及南海出來人)을 진린(陳璘)에게 보내어 모의하게 하였다”고 서술하였다. 이점에서 ‘이문욱’이 남해의 일본군 진영에서 탈출하여 조선군에 투항한 직후, 손문욱이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br />이문욱에서 손문욱이 된 것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다. 당시 [[항왜]]들 귀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출신이 드러나지 않는 김, 이, 박 같은 성씨로 창성하거나 그들이 사는 지역 호족 성씨로 창성하는 경우가 있었다. 부산과 인접한 [[밀양]]에는 고대 부터 [[경주 손씨]](慶州孫氏)와 일직(안동) 손씨들의 살고 있었다. 따라서 경상남도에서 손씨는 흔한 성씨였으므로 이문욱이 손씨로 창성하였으리라 보인다.
 
혹은 정유재란 이후에 일부 왜인들이 조정으로부터 사성(賜姓)된 사례를 살펴보면, 이문욱(손문욱)도 본래 성이 없다가 이후에 창성(創姓)하였거나 사성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 이문욱에서 손문욱이 된 것에 대해서 여러 설이 있다. 당시 [[항왜]]들 귀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출신이 드러나지 않는 김, 이, 박 같은 성씨로 창성하거나 그들이 사는 지역 호족 성씨로 창성하는 경우가 있었다. 부산과 인접한 [[밀양]]에는 고대 부터 [[경주 손씨]](慶州孫氏)와 일직(안동) 손씨들의 살고 있었다. 따라서 경상남도에서 손씨는 흔한 성씨였으므로 이문욱이 손씨로 창성하였으리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