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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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때인 [[1633년]],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수찬, 부교리, 지평, 정언, 부교리, 헌납을 지냈고 병자호란 이후 교리, 지평, 수찬, 이조좌랑, 부교리를 지내고 암행어사에 이어 응교로 승진한다. 이후 충청도암행어사로 민정을 다스렸고, 이후 집의와 사간, 보덕을 지낸 뒤 다시 이조좌랑과 사간, 응교 등 청요직과 옥당, 대간과 낭관 직을 두루 지냈다. 이후 암행어사로 다시 나가서 민정을 다스렸고, [[1643년]] 이후 동래부사를 거쳐 암행어사에 이어 충청도관찰사가 되고, [[1645년]]에 [[동부승지]]가 되고, 이어서 승지로 있다가, 마침내 [[우승지]]가 되는데, 이 때 [[좌의정]] [[김자점]]이 [[민회빈 강씨]]를 죽이려 하자 [[영의정]] [[김류]]와 전직 영의정이던 심열, 홍서봉, 그리고 [[병조판서]] [[구인후]], [[이조판서]] [[이경석]], [[호조판서]] [[이시백]], [[영중추부사]] [[김상헌]], 전직 영의정이던 최명길과 조익, 조경 등과 극력으로 불가함을 아뢰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평안도관찰사로 있다가 광주부윤과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효종 때 [[도승지]]가 되며, [[영의정]]이던 [[김자점]]의 처형을 주장했다. 이후 효종의 신임으로 [[대사헌]]으로 고속승진하고, [[예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지경연사, [[공조판서]]를 지내고 동지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다시 [[병조판서]], [[이조판서]], [[형조판서]], [[공조판서]], [[예조판서]]를 지내고 원접사로 중국에 다녀온 뒤 다시 [[예조판서]]와 [[호조판서]], [[대사헌]]을 거쳐 [[한성부판윤]], [[대사헌]], [[예조판서]], [[호조판서]]에 이어 다시 제조를 거쳐 [[예조판서]]를 지내고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의정]]이 되고 도제조를 겸하다 [[좌의정]]이 되고 판중추부사로 물러났다가 다시 [[좌의정]]이 되고 내의원도제조에 이어 판중추부사를 하다가 이후 다시 영중추부사가 되고 [[좌의정]]이 되었다. 이후 영중추부사로 치사한다.
 
{{좌의정}}
[[분류:1609년 태어남]]
[[분류:1677년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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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조선의 문신]]
[[분류:서인]]
[[분류:좌의정]]